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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네 집> 앞 표지



* 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 조수정, 앨리스

  얼마 전, 한 인터넷 서점에서 날아온 뉴스레터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입니다.
  그 뉴스레터에는 책 표지의 그림이 실려있었지요.
  한 아이가 마룻바닥에 배를 깔고, 팔과 가슴팍에는 베개를 끼우고, 고양이와 함께 그림책을 보고 있는 모습, 광목천으로 가리워진 왼쪽 벽에선 은은한 노란 햇살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책은 '율'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네 한 가족이 한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대한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 확 땡기는 것이 있었지요. 그래서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검색을 두드려보니, 분류가 '수필'이 아닌 '여성/가정' 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찾아봐도 안나오길래, 점원에게 부탁을 했더랬죠. 그래서 겨우 찾게되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에 계산을 치르고 바로 읽기 시작하여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 읽은 것 같네요.
  책 두께가 얇기도하거니와 한옥 구석구석을 담아놓은 사진들이 많아서 읽기에는 매우 쉬웠습니다.

  요는 이렇습니다.
  의상학을 전공한 '권재혁', '조수정' 두 사람은 '권재혁'이 우리나라 굴지의 패션디자인 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가지고, '공책 디자인 그래픽스'라고 하는 문구 전문 회사를 설립해서 알콩달콩 경영해가다가 좀더 큰 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다보니, 삶의 여유가 없어지게 되었고,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우연히 지인의 도움으로 한옥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본래 한옥 둘러보기를 좋아했었던 두 사람이었기에, 처음에는 좋아라 하였지만,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협소하고, 불편함이 많은 것만 같은 한옥살이는 막상 닥치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을 넘게 생활하면서 과거 살던 사람들의 손때 묻은 추억들과 마주하고, 작은 마당에서 생명들과 마주하고, 불편한 부분들을 자신들의 생활 패턴에 맞게 고쳐가다 보니, 진정한 한옥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한옥에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한다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바쁘게 사는 것과 여유 없이 사는 것은 다르다. 처음 작은 사무실을 마련하고 바쁘게 살았을 때에는 그래도 마음만은 여유로웠다. 한옥을 둘러보며 작은 꿈들을 도란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우리는 오로지 바쁘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남편도 나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여행계획 짜기에 한창 열을 올리던 우리 가족은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p.10)


  짐이 들어오니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집이 훨씬 작아 짐정리 때문에 며칠 동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한옥으로 이사온 게 약간 후회스럽기도 했다. 아파트는 앞베란다며 뒷베란다며, 마음만 먹으면 물건을 꼭꼭 숨겨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한옥은 그런 술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공간이 마당과 맞닿아 있고, 마당은 하늘로 열려 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보여주어야 하는 곳이었다.
  정리 되지 않은 짐들을 찬찬히 훑어보니 사놓고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꽤 보였다. 아마도 아파트 베란다 수납장에 구겨 넣고 잊은 것들일 게다. 그것들이 없어서 사는 데 불편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으리라.
(p. 30)


  어느 날 마당에서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던 율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나는 한옥으로 이사와서 참 좋아. 기와지붕이 정말 예쁜 것 같아. 마당에서 뛰어 놀아도 되고, 매일 하늘도 볼 수 있잖아."
  이 집은 분명 아이에게 좋은 기억을 주게 될 것 같다.

(p.78)


  이 야기는 말 그대로 아파트에서 살던 한 가족이 한옥으로 이사를 가서 살림살이를 하는 이야기이지요.
  '살림'
  흔히 어머니들이 하는 가사노동을 가리키는 말 정도로 생각해버리기 쉬운 이 말의 사전적 의미 중 가장 앞에 나와 있는 뜻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살림'이라는 말은 동사 '살리다'에서 나온 파생명사일 것이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 혹은 생명이 붙은 목숨을 더 잘 살 수 있도록 살리는 것이 바로 '살림'이라는 말인 것이지요. 그런 중요한 '살림'살이가 어떠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가는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요사이 끊임없는 경쟁 속에 살아가느라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숨막히게 앞만 보며 뛰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인 집은 휴식과 안락한 장소로 생각되어지기 보다는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머물렀다 가는 장소, 씻고, 밥먹고, 옷갈이 입는 곳 정도로 최소한의 것들만 갖추어놓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편의'와 '편리'라는 이름아래 그 집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할 여유조차,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공간을 느껴볼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분명 저에게도,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몇날 몇일씩 쏟아지는 장맛비 속에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다락방에서 혼자 들으며 참으로 행복해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율이네 집>은 그렇게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여유와 공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면서, 아기자기한 한옥의 모습과 행복해만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 예뻐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고운 질투심과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그런 책입니다.

  한 편으로는
  두 사람이 모두 디자이너이고, 나름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오너들이어서, 그래서 뚝딱뚝딱 고쳐가고 꾸며가면서, 경제적 여유와 함께 삶의 여유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까... 하는 생각과.
  사진을 위해 다분히 연출된 듯한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현실은 저렇게 예쁘지만은 않겠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였지만, 막상 시작해보지 않고서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부러움의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새, 아파트 가격도 많이 떨어졌다고 하던데,
  내집 장만이 꿈이신 많은 소시민 여러분들, 이 책과 함께 아파트 말고 알콩달콩한 나만의 한옥을 한 채 내집으로 갖는 꿈을 꿔보시는 건 어떨런지요..


덧붙임:
  책이 얇고 사진이 많아서 서점에 서서 읽으셔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입니다만, 제가 살 때에는, 비닐에 쌓여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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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버제로 2009/02/06 17:1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예쁘네요.ㅋ
    언젠가 이런집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는데.
    사실 쉽진 않을꺼 같네요.
    워낙 도시생활, 아파트생활에 익숙해져버렸는지라.

    • 차이와결여 2009/02/06 17:17  address  modify / delete

      저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있긴한데요.
      원래 소망은 이루어지기 전이 더 아름답듯이, 막상 하게 되면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을 것 같긴해요.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잃는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더욱 큰 것 같아요.. ㅎㅎㅎ

      그래도 기대가 아니라 확신일 거라고 꼭 믿고만 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