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정말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번 포스트에서 말씀드렸듯이 중요한과제를 해야했기에, 모진 마음을 먹고 월요일날 학교에 등교를 하였지요.
수업하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과제만을 생각하려 했었답니다.
  그런데 아침 회의시간에 떨어진 뜬금없는 날벼락...
  6월 초에 "학교 평가"라는 것이 있다네요.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나와서 학교의 운영상황을 점검하는 것인데, 준비자료로 100여 페이지가 넘는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
  뭐.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담 주부터 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말고, "행정 감사"라는 것을 또 받게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시기도 비슷하고, 자료 제출은 목요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학교에 가기만 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료준비를 했답니다.
  "감사"라는 것은 3년 마다 한 번씩 받는 거라. 3년치 지난 문서를 모두 뒤적여야 하고, 정리해야 하고, 완전 정신 없었습니다.

  덕분에, 과제는 집에 돌아와서부터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꼬박 날밤을 세워야 했습니다. 다음날을 생각해서, 출근하기전 1시간 눈 좀 붙인 것이 전부였어요. 하지만, 몸이 긴장을 해서인지, 잠도 안오고 피곤하지도 않더라구요.

  그렇게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오늘 잘 발표까지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내심 뿌듯한 이 느낌.. ^^

  그런데, 오늘 아침 한참 과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컴퓨터화면에 속보가 뜨는 거에요..

  "노 전대통령 사망설, 신변에 이상 있는듯."

  그래서,

  '아.. 몸 안좋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노태우가  죽었나보다.' 하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노 전대통령은 '노무현' 전대통령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에 출두하여 12시간의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피곤하지만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 노전대통령이더군요.
  더군다나, 사인은 자살이라는 겁니다.

  '대통령의 자살'

  얼핏 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지난 날의 영화라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이제 껏 살아오면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수업 도중 전화로 비보를 전해들으신 노교수님은 착찹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공부하기도 싫어진다시며, 눈시울까지 적시더군요. 이 놈의 나라가 어떻게 되가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어린 시절 신기하게만 생각했던, '5공 청문회'를 통해 스타가 된 인권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었다는 것과,
  남들이 꺼려하는 부산에서 그것도 '민주당' 출신 후보로 선거에 나서 번번히 실패를 겪었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과,
  거의 아무런 정치적 연고도 없이 경선을 통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또 '노사모'라는 자발적 조직을 바탕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 정도가 제가 알고 있는 인간 노무현의 전부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된 이후의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5 대 5 정도로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가 한 일중 한미 FTA에 대해서는 무조건 잘못한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를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사회로 이끈 사람이라는 점은 무조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가 가지는 일반인과 사이의 높은 벽을 허물기위해 노력한 사람임은 분명하고, MB에 의해 많이 과거회귀 되긴 했지만,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그 이전보다 많이 가깝게 느껴진 것은 사실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많은 개선의 노력들과 소통의 노력들과 다양한 목소리들에 대한 수렴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점은 앞선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기에 분명 칭찬받아야 할 일입니다.

  또한,
  '박정희' 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인해, '박정희'의 치부는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업적만이 남았듯, 그 이후에 집권하는 집권자들은 그런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었으나, 그는 그다지 그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두환'의 '정의사회구현', '사회정화운동', '노태우'의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6,29선언', '김영삼'의 '금융실명제', '김대중'의 '햇볕정책', '남북 정상회담', '노벨평화상수상'...
  전직대통령들은 마치 역사교과서를 혹은 사회교과서에 이름 몇번 나오나 내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신의 치적 쌓기에 분주했지만, 그는 자신이 살던 고향마을에 '봉하마을' 하나 만들고 욕은 들을대로 들은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결단은 있어서 위기의 순간마다 머리 굴리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바보스러움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도 '자연인'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고, 결국 패소판결이 난지 40여일 만에 고향마을로 돌아와 법률적 자연인이 되었던 그.

  그런 그가, 오늘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스스로 진정한 자연인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몸을 던지게 된 이유가, 검찰의 수사 때문이든, 주변사람에 대한 미안함이든, 죽음으로써 진실을 항변한 것이든지 간에,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것은 '노 교수님'의 말씀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착찹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하늘은 맑기도 했습니다.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cha2.co.kr/trackback/22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실버제로 2009/05/24 05: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달리 할말이 없는 일입니다.

    먼 타국에서 듣고 많이 놀랬더랬습니다. 여기 뉴스에도 나왔고요.
    대통령이 되기전 참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제가 첫투표권을 가지게 된 선거였는데, 부모님이 노무현대통령을 뽑는걸 싫어해서 싸우고,
    선거를 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이 되신 이후에는 솔직히 많이 실망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것을 좌지우지 할수있을것같지만 그렇지않다는거 잘 알죠.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시는건 알았는데.
    이렇게 서거소식을 접하게 될지 누구알았을까요.
    국화꽃이라도 한송이 드리고 싶지만 상황도 안되는군요.

    이래저래 한국은 정말 뒤숭숭하겠군요.

    • 차이와결여 2009/05/25 11:46  address  modify / delete

      결과적으론 잘한 것도 잘 못 한것도 있지만, 어쨌든 대통령을 해선 안되는 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 권력을 갖기에는 너무 곧으셨어요.

      조금 휘어질 줄 알았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리저리 잘도 휘어지면서 잘먹고 잘사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죠.

  2. 성~ 2009/05/24 11:2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람이 떠나고 다시는 못보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갑자기 막 그립게 되는거 같아...

    잘은 모르지만 저 사진이 아마 구멍가게에서 담배피우고 동네사람들이랑 막걸리 마시는 그렇게 보통 사람같아서 좋았는데...

    하루가 지난 지금도 거짓말같고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만 든다...

    괜히 세상이 온통 다 우울해지는 것 같은 기분... --

    • 차이와결여 2009/05/25 11:47  address  modify / delete

      원망스러운 사람이 어디 우리 뿐이겠어..

      많은 사람들이 원망스럽게 생각하겠지만,

      '원망하지 마라'고 하셨으니...

      그냥 애도할 뿐이지...

  3. 카르페 디엠 2009/05/24 12:5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노교수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의 책임이 어느정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축 늘어져 훌쩍거렸어요
    지금까지 뱃속에 무언가 뭉쳐있는 듯 음식을 먹기도 힘드네요
    그분의 죽음으로 저는 다시 한번 확인한겁니다
    보통사람으로, 서민으로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우리의 태생적인 한계를...
    결국은 보통사람이면서 특별한 사람인양,
    결국은 서민이면서 손에 쥔 알량한 돈 몇푼에 상류층이라도 된양,
    그렇게 착각했던 우리의 책임입니다

    • 차이와결여 2009/05/25 11:49  address  modify / delete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오늘의 이 떠들썩 함이 얼마나 갈런지 의심스럽기도 하구요.

      어쨋든, 각성과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니 이를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그 분의 뜻을 잇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역시나, 먹고사니즘에 빠진 제게는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