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자이너 모놀로그> 포스터

 

* 2009년 08월 22일 19시 00분

* 대학로 SM 스타홀

  (★★★★★)

 

  드디어, 몇 년 동안 벼르고 벼렸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았습니다.

  사실,

  이 연극은 거의 매해 올려지다시피 하는 연극이지만,

  포스터와 제목에서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압도되어서 선뜻 보러 갈 수는 없는 연극이었습니다.

 

  물론,

  '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열려 있다고 생각하는 저이지만,

  여자 친구와 보러 가기에도 조금 주저되고, 혼자서 보러가기에는 더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 소재이지요.. 주저주저...

 

  그러는 가운데, '서주희'씨가 올렸던 연극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또 다른 배우에 의해 연극이 올려지더라도, 언제나 호평이 이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작년이던가 올해 초에도, 제가 이번에 관람했던 컨셉 그대로,

  본래, 배우 혼자의 독백으로 구성되었던 극의 내용을, '이경미', '전수경', '최정원' 이른바 <맘마미아> 3인방의 토크쇼 형식으로 올린다는 소식을 들었었지만, 역시 혼자 가지 못하고, 친한 후배들에게 말을 꺼내기도 두려워서.. 그만, 놓치고 말았었던 연극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보고야 말리라, 혼자서라도 보러가리라 모질게 맘먹고, 예매를 했습니다.

  무슨 연극 한 편 보는데 모진 맘을 먹냐고 비웃으실 수 있지만, 막상 공연장에 가보면 그런 말은 안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남자분이시라면요.

  제가 갔던 공연에도 2~300여석 되는 자리가 만석이었는데, 남자 분들은 뜨문뜨문 섬처럼 박혀있는 상황이었어요. 열 분 정도 됐나.. 그보다는 조금 더 많았던가..

  그런 분들도  모두 연인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경우였고, 남남 커플이나, 남녀가 섞인 단체 관람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혼자 앉아 있으려니.. 그것도 앞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참 멋쩍었습니다.

 

  여튼,

  시작은 그랬지만, 연극의 내용과 배우들의 연기에는 200% 만족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전수경'씨가 등장하여서 토크쇼 진행자와 같은 인사를 하며 극은 시작합니다. 그리고 익히 알고 계시듯, 우리가 몰랐던, 혹은 모르려고 했던, 모른척하고 지나왔던 '그것'(마땅히 지칭할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극을 보며, '우리의 신체 중에서 이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제대로 불리워지지 않는 곳이라며, 이제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라고 하는 배우들의 말에 공감은 했지만, 실제는 다르니까요.)에 관련된 많은 여성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관객 앞에 재현되게 됩니다.

 

  남편을 위해 제모를 해야만 했던, 그래서 고통 속에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여자,

  젊었을 때의 작은 실수로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었던 여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못된 어머니의 교육으로 인해 자신을 미워해야만 했던 여자,

 

  연극이 시작되면서부터, 관객들은 언제쯤 '그것'이 배우의 입에서 튀어나올지 조마조마하게 되지만, 실상, 이 연극의 중심 소재는 '그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세 배우는 돌아가면서, 마치 사연의 주인공들의 혼에 씌우기라도 한 듯, 신들린 듯한 연기, 매번 눈물이 떨어지는 연기를 보여주어서, 앞에 앉은 저로써는 온몸에 닭살이 돋는 걸 느끼며 연기를 감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연들을 더욱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고, 때론 자지러지게 웃고, 때론 코끝 시리게 찡그리며, 비록 남자의 몸이지만, 조금은 더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거지만요...

 

  이번 연극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전의 연극에는 없었던, '출산'에 대해서 이야기 하던 부분이었습니다.

  원래는 없는 내용이라, 세 명의 배우가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수다를 나누듯 관객에게 공개해주었는데요.

 

  막연하게, '출산'이란 것은 '여성들이 거쳐야만 될 통과의례'라고만 생각했던 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출산'의 신성함이랄까, 위대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진지하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출산'은 그냥 신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제가 그래서, 낳을 수 있으면 낳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생각을 했던 제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튼,

  이번에는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어서 감상에 조금 미진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요.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연극입니다.

 

  기왕이면 본래 버전의 독백 형태로 보고 싶네요...

 

  이 연극은 모두에게 강추입니다.

  여자 친구끼리 손붙잡고 가도 좋고, 연인들끼리 다녀와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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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9/08/27 12:1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아무래도 추락하는 출산율을 올리고자 정부에서 지원한 연극이 아닌지..수상해 수상해..ㅋ

    • 차이와결여 2009/08/27 13:10  address  modify / delete

      오.. 그렇네요...

      그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러고 보니 뭔가 수상한데요??

      당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