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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 티저 포스터



   * 2010년 08월 14일 토요일 15시 15분
   * CGV 동탄스타
     (★★)


  아침 일찍 건강검진을 마치고 어젯밤부터 한 금식때문에 거칠어진 속을 달래느라 죽을 사먹고 나니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영화를 한 편 볼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미 <인셉션>, <아저씨>를 봤으니 <토이스토리3><악마를 보았다> 중에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서울로 원정을 간다면 다른 영화들도 볼 수 있겠지만, 내일 먼 여행길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를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동네 근처에 새로 생긴 'CGV 동탄스타'에도 한 번 가보고 싶은 맘도 있어서 결국 <악마를 보았다>를 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이미 폭력의 수위가 높아서 제한상영가를 받느냐 마느냐의 논란으로 인하여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던 영화이지요. 저는 영화의 내용상 설정이나 영화적 효과를 위해서 폭력이 사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쏘우>시리즈나 <나이트메어>와 같이 말초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과도하게 피를 난무하는 영화를 즐기는 성격은 아닙니다. 이유는 그러한 영화가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김지운'감독의 영화였고, 이전까지의 '김지운'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 분명히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폭력을 활용했을 거라고 짐작을 했기에 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병헌'이나 '최민식'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지요. 암튼, 늦은 점심을 먹고 극장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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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철'의 친구네 펜션 안의 한 장면, 역시 벽지까지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잘 알려진대로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인 '장경철(최민식)'에게 약혼녀를 희생당한 국가정보원 요원 '김수현(이병헌)'이 혈혈단신의 몸으로 응징을 한다는 비교적 간단하고 명료한 내용입니다.

  당연히 내용상 영화는 스릴러로 구분될 수 있겠고, '이병헌''최민식' 두 명의 주인공이 '선''악'을 대변하며 전개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의 결말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고,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고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악마를 보았다>가 그런 뻔한 이야기로만 표현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과연 이 뻔한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 '김지운'감독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간의 영화스타일로 짐작해 보았을 때 아마도 <달콤한 인생>이나 <놈놈놈>에서와 같이 장르에 맞는 스타일리쉬한 영화적문법에 치중한 영화가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장화,홍련>과 같이 극단적 상황에서 미묘하게 변화하는 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 영화 혹은 그 둘을 모두 포함하는 영화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처음으로 희생양이 되는 '김수현'의 약혼녀의 장면에서 하얀 눈과 밤과 붉은 피, 그리고 현악기들의 그로테스크한 조화를 보여주면서 나름 스타일리쉬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설정들은 여러 군데에서 보이는데요. 처음 희생자의 사체가 발견되는 장면에서 수많은 취재진과 경찰들 그리고 주인공 '김수현'이 한데 뒤엉키며 벌어지는 장면이라거나, 고딕풍의 '장경철' 친구의 펜션 안 식당의 분위기 등등이 그러합니다. 물론 다른 살해씬들에서도 소품 하나하나 피가 얼굴에 묻은 장면 하나하나에서도 나름 표현되고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은 이미 '김지운' 감독이 잘하는 연출들이라 특별하지는 않았어요. 외려,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에서 말한 첫 희생자의 씬들에서는 <렛미인>의 음울한 풍경이 떠올랐고, 경찰과 취재진들이 뒤엉키는 장면의 혼란스러움은 <살인의 추억>에서 먼저 표현되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밤과 낮이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또 고딕풍의 식당은 옴니버스 영화 <쓰리>의 박찬욱 감독 편의 한 장면이 생각나더군요. '최민식'이 등장하는 것이라는 공통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식당에서의 겁탈씬은 <친절한 금자씨>의 그것과도 매우 유사했습니다.
  원래 연쇄살인범을 쫓는 영화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틀은 또 <추격자>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겠지요.(이건 좀 위험한 이야기인 것 같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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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좀 말이 안되는... 아무리 양평이지만 병원에 손님이 이렇게 없다니..



  그래서 그렇게 별다를 것 없고 오히려 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 영화의 내용과 흐름에서 과도한 폭력성과 난무하는 피가 꼭 나와야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요.
  감독의 의도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스타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 '김수현'의 심리변화와 '장경철'의 극단적인 행동을 대조, 대응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하나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과 죽이고 싶도록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극단적인 폭력으로 표현했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보아온 많은 영화들 그리고 이야기들에서는 선인을 선인으로 남기기 위해 최후의 복수는 인간의 손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식으로 피해가기 일쑤잖아요. 악인이 도망가다가 차에 치여죽는다거나, 발에 끈이 걸려 낭떠러지로 떨어진다거나와 같은...
  하지만 제가 생각해봐도 내게 정말 가까운 사람이 살해를 당한다면 그 살인자를 찾아가 내 손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본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보아왔던 영화 속 장면들은 '위선'이랄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위선'을 떨지않기 위해선 직접 손으로 벌을 내려야 할텐데, 그렇다면 선인도 더이상 '선인이 아니라 악마'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따라서 영화의 제목에 생략된 부분을 더하면 '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명히 감독도 그러한 부분을 표현하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확신이 들기도 했지요. 하지만, <악마를 보았다>는 그러한 감독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득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 '김수현'은 이미 처음부터 '장경철'을 잡았다가 풀어주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이 설정해놓은 결말을 향해서 달려가는 인물이고 살인자 '장경철'은 고통이나 두려움 따위를 모르는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이지요. 둘 모두 변할 수가 없는 인물들입니다.
 
  어떤 글들을 보니까, '김수현'이 복수를 해나가면서 점점 '장경철'을 닮아간다고 얘기했던데, 제 생각으로는 이미 '김수현''장경철'은 그 복수와 살인에 대한 욕망의 크기가 비등한 인물들이어서 누가 누구를 닮아간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냥 '김수현'은 약혼녀가 당했던 아픔만큼 똑같이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인물이고, '장경철'은 살인 자체를 게임하듯 즐기는 인물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그 둘을 표현하는 과도한 폭력들은 그냥 그대로의 폭력일뿐이고 더이상 의미를 갖기가 힘듭니다. 설득력이 없는 폭력들이 난무하는 겁니다. 좀 박하게 말하면 많이 빼버리고 짧게 만들어서 15세 관람과를 했어도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지금과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하드코어를 표방하는 것도 아닌데 영화의 스타일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용을 위한 것도 아닌 장면들을 위해서 굳이 제한상영가를 받네 마네 할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래간만에 쓰려니까 정리가 잘 안되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말았는데요.
  '이병헌''최민식'의 연기는 그냥 그런 수준입니다.
  왜려 지난날의 어떤 영화들에서 봤던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낯익어서 '연기 잘한다'와 같은 감탄은 나오지 않더군요.
  저는 '이병헌'이 차라리 <그 해 여름>, <번지점프를 하다>, <내 마음의 풍금>에서와 같이 폼잡지 않고 소탈하게 나오는 연기를 하는 것이 더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최민식' 스스로도 말했지만 너무 쎈 연기를 많이 해서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센 연기를 할 때마다. '이~ 씨발새끼야!'라는 말을 매우 많이 하는데, 그 톤이나 발음이 너무 똑같아서 그냥 그 인물이 그 인물 같다는 느낌도 들었네요.

  영화에서의 폭력장면에 대해서는 나름 혹평을 했지만, 스릴러물 답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은 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왜 그러지?'라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잔인한 장면이 나올까봐 움츠리고, 불쌍한 희생자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안타까워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은 잘 모르겠더군요.
  나중에는 너무 많이 죽다보니까.. '이젠 그만 죽여라', '그만 좀 놓아주고 그냥 복수하고 끝내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감독이 관객에게 의도한 것이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라면 의외의 성공적인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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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디엠 2010/08/15 18: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거..딱 제 취향의 영화인데..쩝,
    통영 여행 중인가봅니다.
    전 국외여행은 꼭 혼자를 고집하는 편인데
    혼자 국내여행은 좀 꺼려지더라구요..
    장경철씨 만날까봐서요^^
    멋진 여행후기 기대할께요.

    • 차이와결여 2010/08/16 01:04  address  modify / delete

      풋.. '카르페디엠'님의 응용력이란..

      역시 재치가 번득이셔요 ^^

      '장경철'씨..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하네요..

      영화를 보고 났더니, 제 앞에 여자들이 혼자 지나갈 때, 내 안에도 악마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섬뜩하더라구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