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금 전에 전화가 한 통 왔었다.
  하지만, 수업 중이라 받지 못했다.
  확인을 해보니, 'OO택배'

  얼마 안 있어 문자가 왔다.

  '고객님이 부재중이어서 경비실에 맡겨두었습니다.'

  "택배라고?"

  아침에 아버지가 필요하시다던 '스포이드'를 구입하긴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히 학교로 배달을 시켜놨는데 경비실이라고?

  택배기사가 착각을 하여 학교 행정실을 경비실로 말했을 것 같진 않았다.
  주문했던 쇼핑몰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수신지는 학교...

  궁금함에 택배기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운행중이거나 배달중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요 몇 일 사이에 무언가를 구입한 것 같지 않은데...
  책도 아닌 것 같고, 메일함을 열어봐도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옆자리에 계신 선생님께서 때로는 보험증권이나 고가의 홍보물 같은 것이 택배로 온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나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러다가 생각 난 것이 얼마 전 가지고 다니는 카드의 마그네틱이 손상되었는지 인식되지 않아서 새로 신청을 할까 했었던 적이 있긴 했지만 막상 신청하려니 귀찮아져서 말았었다.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혹시나..하는 생각을 가져보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나의 집 주소를 아는 사람은 부모님뿐...
  부모님이 뭘 보내셨을리도 만무하다...

  왠지, 확인하고서야 뒷머리를 치며 짧은 기억력을, 건망증을, 나이 듦을 한탄하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기분은 정말 싫다.


2.
  어찌된 일인지 학교에 소문이 돌고 있다.
  당연히 우리반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작년에 가르쳤던 지금은 3학년이 된 아이들이 나를 볼 때마다,

  "선생님, 선생님, 곧 결혼하신다면서요?"
  "으잉? 그게 무슨 소리냐? 여친도 없는데..."

  "아닌데, 결혼하신 다던데... 선생님 집이 디게 부자라서 준비도 다 되어 있다면서요~"
  "아.. 이게 무신... 샘 집이 샘 결혼한다고 준비를 해줄 만큼 부자면 샘이 이 상태겠니?~ 준비는 깨뿔...."
  "이상하다... 진짜라는데.."
  "야.. 선이나 보러 가야겠다...ㅠ"
  "샘.. 불쌍해요..."

  학교에 곧 결혼하실 분이 두 분 계신데, 그 분들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인가.. 생각해보지만, 그냥 넘기기엔 뒷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다...이 무슨...
  좋은 말도 한 두번이지, 변명하는 것도 구차하고, 변명하고 나면 진실을 밝힌 기쁨보다 나를 동정(?)하는 듯한 아이들의 표정이 더 가관이다..
  아.. 이 무슨....

3.
  한동안 글에 대한 욕구가 지대했는데,
  요새는 말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진다.

  그렇다고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절대 아니고, 글로는 왠만큼 나의 진심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데, 왠지 말로써는 내용의 10분의 1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어교사가 말을 제대로 못하다니 말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있고,
  왠지, 말을 할 때면 마음만 급하고 말을 하고 나서 항상 후회하는 것 같은 생각이다.
  말이 재미가 있고, 재치가 있고, 조리있었으면 좋겠다.

  말에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겠지..

  좀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말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그런데... '전화 조차 하기 싫어하는 내가?' 라는 걱정이 든다.
  이거 투잡으로 '남자친구가 되어 드립니다..' 같은 것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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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자미 2010/09/30 18:4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무슨 ㅋㅋ 한참을 웃었더랬지요.
    추석때 괜히 바쁜척해서 얼굴도 못봤는데..ㅜ 코끝시린 바람불기전에 한번 보아요:)
    아....택배 너무궁금한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차이와결여 2010/09/30 19:26  address  modify / delete

      역시 별 것 아니었어...ㅋㅋ

      이미 코끝시린 바람은 불고 있잖아요... ㅎㅎㅎ

      아.. 가을이에요.. 만나요. 우리!

  2. clovis 2010/10/01 21:5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이무슨... ㅎㅎㅎ 완전 입에 달라 붙는데요?? ㅎㅎ저는 분명히 회사로 택배한 줄 알았는데 집으로 해놨던 적이 많아요..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아 이무슨

    • 차이와결여 2010/10/02 06:55  address  modify / delete

      재밌죠.. ㅋ

      아, 이 무슨...

      정말, 헷깔리는 것 같아요.. 결국, 저에게 배달되었던 것은 2달에 한 번씩 받아보는 잡지였어요.. ㅋㅋ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바보 '차이와 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