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보기엔 선생님이 장가를 못가는데에는 이유가 있어."
"몰까요?"
"일단, 별로 급하게 생각하는 거 같지 않고,"
"네. 맞아요."
"그리고 왕자병도 좀 있는 거 같구..."
"모르셨어요? 저 중증인데??"


물론,
나를 속깊이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분의 말이었고,
갑자기 뜬금없이 말씀을 하신 것이긴 했지만,
어쨋든,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의 객관적인 평이라
무시하고 넘어갈 순 없었다.
나도 맞장구 치듯, 인정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정말 나는 나도 모르는 왕자병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심심찮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는 내가 잘났다거나, 혹은 외모가 괜찮다던가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살지도 않는 평범한 사람이다.
외려,
가끔은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억울해하며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죄송해요 오마니, 아부지),
샤워하고 거울보면 뿌듯하기 보단 외면하고 싶을 때가 8대2 정도의 비율로 많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런데도,
왜 그런 말을 듣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먼 기억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롤링 페이퍼'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아이들로부터 받은 이야기들 중 반 정도가  '너는 잘난척을 너무 많이해.' 라는 말이었다.
어린 마음에 충격을 받았던 나는 그 쪽지들을 버리지 못하고 상자 안에 넣어 한동안 다락방 깊은 곳에 숨겨두고 틈이 날 때마다 열어 보았던 기억과 그 때의 그 낭패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한동안
그 일이 계기가 되어서 나는 무슨일이건 남앞에 나서는 일을 두려워했고, 튀는 행동을 스스로 검열했으며, 타인의 시선을 무진장 신경쓰는 소심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살아가는데 그런 모습이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향적 성격이 되기위해 부단히 노력한 끝에 지금은 많이 달라져지만,
아직도 남들의 시선을 100% 의식않고 살아가는 건 아닌데도.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분의 그 말씀은 여러 가지의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말인 것 같아서,
아마도 내 나이가 혼기가 지났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신 탓에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는 아직 아닌데......
'지금 해도 좋고, 몇 년 더 있다 해도 좋고, 못하면 말고' 정도의 판단일 뿐인데,

이런 판단까지도 남의 시선을 신경쓰면서 살아야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진짜,
그런 말들은 아무리 앞에다 말해주고 싶더라도,
가슴 속에 꽁꽁 묻고 그냥 무덤까지 가져가셨으면 하고 부탁드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또 문득 드는 생각.
혹시, '못하면 말고' 의 생각도 자신감, 오만함, 왕자병의 속성인 것일까???

몰라몰라,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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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르페 디엠 2008/09/24 09:3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왕자병은 '나 잘났음'을 드러내려한다는 것이고...
    분명히 '나 안 잘났음'이라고 말은 하는데 왠지 도도한 사람..분명히 있습니다^^
    왕자병보다 한단계 위인..'황태자병'이라고 해야하나?
    우선 지적입니다..그리고 외모는 뛰어나진 않지만 빠지지도 않습니다
    자존심이 무척 강합니다..등등
    이런 남자분 의외로 많더군요..매력은 있으나 보통 여자분들이 버텨내지를 못하죠
    아마도 지고지순한 여자라면 모를까~
    결혼했다는 것..그거 사실 별로입니다..결혼한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 차이와결여 2008/09/24 13:09  address  modify / delete

      아..아..
      이 댓글은 저를 좌절시키는 댓글이네요..ㅎㅎ
      '왕자병'도 버거운데, '황제병'이라니요..
      근데,
      지적해주신 부분들이 얼추 제가 추구하는 바와 비슷한 것 같아서 더더욱 좌절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지적'이거나, '빠지지않는 외모'라는 건 아니구요..
      그래도,
      마지막 줄 '사실 별로라는 말'에 위안을 삼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