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 2008년 08월 30일 16시 20분
Where : CGV (오리)
(★★★★★)
관객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영화의 뒷면.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재미있는 영화를, 멋진 자동차씬을, 현란한 액션씬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 <우리는 액션배우다>는 '정두홍'감독이 오래 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서울 액션스쿨' 제8기 수료생들의 좌충우돌 액션배우 입문기를 그 수료생 중, 한 명인 '정병길'이 연출을 맡아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2004년 서울 액션스쿨 제8기 오디션장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심사위원들은 극히 주관적인 판단 기준에 의해서, 혹은 인간적인 면에 끌려서 총 63명의 훈련생들을 뽑았고 6개월 동안의 뼈를 깎는 듯한 훈련 끝에 최종적으로 수료한 사람은 10명 남짓.
그 가운데에서 다큐가 촬영될 때까지 영화현장에서 스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은 '권기덕', '곽진석', '신성일' 단 세 명 뿐이다.
자동차 정비공의 전직을 가지고 있던 '권기덕'은 자동차를 '고치는 것'에 전문이었지, 자동차를 '뒤집는 액션'에 전문은 아니었지만, 현재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차를 잘 뒤집는 전문가가 되어있고,
'팀버튼'의 <가위손>을 보던 중, '위노라 라이더'에게 반해버린 뒤 미용사의 길을 걸었던 '곽진석'은 복싱 경력으로 다져진 훌륭한 복근으로 발탁되어 여전히 복근 전문, 복싱상대 전문 배우로 활약 중.
별다른 특기는 없었지만, 얼굴만은 주연배우 못지 않았던 '신성일'은 현재 가장 바쁘게 활동 중이다.
그 밖에도 자신의 길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는 감초 같은 역할의 '정세진' (이 분 때문에 웃겨서 죽을 뻔했다.)
두 번의 인대파열로 결국 스턴트계를 떠나, 가수의 길을 준비하는 '권문철'
그 밖에, 오디션에 도전했다 실패했지만 다른 곳에서 또다른 꿈을 찾아가는 많은 액션배우 지망생들...
그들의 삶을 누리는 방식은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그들의 목숨을 건 열정이 참으로 부러웠고,
자신의 몸이 다치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연배우가 다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흐르는 피만 닦아내고 다시 촬영하면 된다'고 말하며 영화를 먼저 걱정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말미에,
영화를 같이 하던 PD의 부탁으로 주인공들이 여고를 찾아가 '스턴트'를 보여주고 나서 소녀들의 환호와 관심 속에서 '스타'처럼 사진을 같이 찍고, 싸인을 해주고 하는 동안,
마치 몸에 안맞는 옷을 입은 듯 멋쩍어하면서도, 얼굴에 떠나가지 않던 미소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아.. 영화, 감사하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시간 동안 번뜩이는 재치로, 꾸밈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정직함으로 끊임없이 웃겨주다가, 나중엔 그 모든 것이 영화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고 현실이고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서 숙연해지게 하는 멋진영화.
별점 만점의 다큐멘터리.
어려운 상황에 좌절하거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안에서 감싸안아나가는 모습의 주인공.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 개성있는 말투, 가정환경에서 비롯한 시니컬함까지... 게다가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한다.
너무 완벽한 모습이어서 거부감이 들 것 같지만, 소설의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 '완득이'의 독백체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같아도 그렇게 '씨부리고'말았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10대 청소년의 심리를 꿰뚫어 그려내는 작가의 능력 덕분에, 거부감 대신 사랑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게다가, '완득이'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은 모두 소설 안에서 완벽한 자기 역할을 맡고 있어서 어느 캐릭터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을 재밌게 해주는 또다른 중요한 요소였다.
'완득이'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인 담임'똥주' 중간 부분부터 가족의 의미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완득의 어머니' 사람과 사람사이의 정과 의리, 배려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아버지', 삼촌 '남민구' 진정한 승리는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지는 것'이라는 삶의 철학을 설명해주는 '관장선생님'
심지어 엑스트라처럼 지나가는 '씨불놈' 앞집아저씨와 철딱서니없는 행동과 함께 귀여운 동네 동생들 같은 느낌의 '세혁', '수종' 그리고 '똘아이' 혁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매니저 1등 '정윤하'까지... 이들이 뭉쳐서 알콩달콩하게 풀어가는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알차고, 상쾌하다.
아무래도 청소년들을 위한 소설이다 보니, 어려운 내용들을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세상의 대부분을 '완득이'의 시각을 통해서 해석하는 것으로 처리하여 머리 아픈 것들은 대충 돌아가고 넘어가고하는 부분이 많지만, 굳이 이와 같은 소설에서까지 그렇게 심오한 것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별다르게 딴지를 걸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읽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내용의 구조가 본 듯 하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스토리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 매우 가난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 아버지는 예술가(춤, 미술), - 주인공은 많이 배우진 못했지만 자신의 특기를 살리게 됨(싸움-킥복싱, 소매치기-스턴트맨) - 주인공을 도와주는 사람들 (킥복싱 관장님- 똥주, 스턴트 감독님-열혈친구) - 신분의 차이가 나는 애인 (정윤하,부잣집 딸) - 이혼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항상 미안해하는 어머니 - 뭘해도 착하고 긍정적인 주인공
'네멋'의 청소년 버전 쯤?
뭐.. 그래도 완전 겹치진 않으니까 표절은 아니겠지.. 허긴 그렇게 치자면 헌신적인 관장님이 나오는 모든 격투기 영화는 '록키'의 표절이겠지..ㅋㅋㅋ
내용을 쭉 따라 읽어가다 보니,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내용들을 깊이 다루지 못하고 주인공 '완득이'의 시각에만 의존하여 풍경처럼 흘러가 벌린다는 점이 아쉽긴 해도, 요즘처럼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때에 이 책과 같이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스쳐가더라도 생각할 여지를 주는 책이 매우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청소년 성장소설이라 구입을 꺼려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청소년 문학의 부흥을 위해서라도, 작가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라도, 한 권씩 구입하셔서
짧게 짬날 때 훌훌 읽고 넘어갈 수 있는 가볍고 재밌는 소설. 정말 재밌습니다. 혼자 킬킬대고 소리죽여 웃느라 혼났습니다.
서점에 가면, 어른들을 위한 양장본 말고 좀더 저렴한 책이 있으니 굳이 양장본을 구입하실 필요는 없을 듯.
'지승호'가 스스로 맺음말에도 밝혔듯이 이 책은 7년 간의 칩거 후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인 '공지영'이 세상에 보내는, 혹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사랑의 3부작'을 마무리 하는 책이라고 받아 들여도 좋을 듯 하다. 허나, 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는 그녀의 전작들을 아직 보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좋으면 더 읽어볼 참이었다.
이 책의 챕터 구성은, '공지영'의 저작들을 한 권씩 화두로 하여 그 작품이 발표되던 시기의 심정, 책의 내용, 세간의 평가들, 그리고 현재...들을 '지승호'가 질문하고 '공지영'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인터뷰의 특성상 정확한 틀을 가지고 그 틀에 맞춰 재단해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당히 넓은 분야에로까지 둘의 이야기는 뻗어 나가기도 하여서 굳이 챕터에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작가 '공지영'이 책 속에서 말하듯, 당연히 그녀 스스로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유년시절의 여러 가지 체험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신의 놀라운 기억력, 작은 것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 세심한 관찰력, 다소 무모하기까지한 순진함들로 인해 이래 저래 세상사에 시달렸고, 유난히 자신에게만 몰아치는 것과 같은 고통들을 통해 자신에게 다가가는 법을 몸으로 체득한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위로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말없이 침묵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 뿐임을 알게되었다고 하면서, 말없이 옆에서 힘이되어주고, 격려해주고, 잘한다 칭찬해주는 것 - 그 한없는 '긍정적 위로' 속에서 믿음이 생기고,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정말이지 깊이 동감했다.
그래서 그녀의 조언이, 위로가, 인생관이,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적 발언이 독자들 대부분의 가슴에 맞닿을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그런 작은 손길이 독자들을 스치고 지나가게 되면 그 진실함에 모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작가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공지영'도 그런 것을 절대로 원하지는 않겠지만, 독자들은 누구나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는 작가의 삶이 녹아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읽은 책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었을 때, 혹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을 때, 환호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좀더 알고 싶어 하고, 작가를 소중히 여기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턱대로 작가의 집 앞에 찾아가 죽치고 앉아 있어봐야 스토커와 다를 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스케쥴을 체크하면서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
그나마 '지승호'의 이런 작업들로 인해, '공지영'을 대면하고 직접받길 원했던 '위로의 말'과 '격려의 토닥임'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커다란 선물이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공지영'을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았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녀를 확실히 다시 보게 되었고, '공지영'의 발랄하지만 경험이 묻어나는 사려 깊은 생각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깊이 동감했으며, 아직 경험부족으로 내가 체득하지 못하고 머리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자아의식들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공지영'의 선배와 같은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더군다나 300페이지가 넘는 긴 이야기 속에 어려워서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부분이라고는 채 10장도 안될 만큼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공지영'의 이야기에,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기에 남들 앞에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녀가 이룩한 깨달음의 깊이와 그녀가 이겨 낸 고통의 크기를 상상하며 동경어린 시선을 갖게도 되었다. 때문에,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동안 다른 일을 모두 팽개치고 얼른 끝까지 읽고 싶다는 유혹에 몸이 달아했었을 만큼, 그녀와의 만남을 즐거워했다.
이러한 경험은 나뿐만이 아니라, 한 번 쯤은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그저 위로를 받아보길 바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삶이 외로운 사람들, 혹은 고단한 사람들, 혹은 작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내 상황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기에 한 구절 적어본다.
지 : 예전에 연애에 관한 칼럼을 쓰는 분이 쓴 글인데, '사람이라는 게 명품, 짝퉁으로 나눌 순 없지만 자기한테 맞는 사람이 있을 순 있다. 자기한테 맞는 사람을 명품이라고 할때, 외로울 때 짝퉁을 명품으로 착각해서 덥석 구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불행해진다'는 얘기였어요. 공 : 맞아요.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에도 썼지만, 스스로 행복할 때에만 눈이 제대로 뜨이는 것 같아요. 다급하고 외로워서 혼자 불행할 때, '누군가 있으면 행복해지겠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보는 눈이 확실히 없어지는 것 같아요.
지 : 집착하게 되고, 금방 상처받고, 관계는 더 나빠지고..... 공 : 홀로여도 행복한데, 네가 있어서 더 좋다. 그런 관계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내가 혼자 공부하면서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는 지식들은 그 속에서 죽어있는 지식일 뿐이고 그것이 삶에 우려져나와야만 살아있는 지식일텐데, 많지 않은 지식임에도 관성에 젖어있기 좋아하는 육신은 무언가를 꺼내려하지 않기에,
차선책으로나마 남을 가르치며 조리있게 말하기위해 머릿속에서 생각들을 굴리는 동안 잠시나마 살아있는 지식이 되곤했다.
그래서 나조차 생각치 못했던 비유를 들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했을 때면 깜짝 놀라곤 하였다.
오늘, 가현이와 민정이를 만나고, 수다를 떨고 그들의 고민에 조언을 해주면서
또 문득, 나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사랑은 "그릇"과 같은 것이었다. 사랑을 하게될 때면, 사람들마다 용량의 차이가 있긴하겠지만, 마주하는 사람과 "그릇" 하나를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각자가 들고 있는 수저로 한 번씩 그 안에다 자신의 마음을 채워넣는 과정이라는 생각. 원칙적으로 그 규칙은 자유롭지만 결코 어기지 말아야 할 것은 한 번에 한 명씩만 그 마음을 채운 다는 것.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똑같은 수저를 가지고 공평하게 한 번씩 마음을 채워넣는 것이겠지만, 때로는 욕심에 그가 안보는 사이 한 번을 더 넣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움에 살짝 빈 수저를 담그기도 하는 것.
나는 때로는 한 번을 더 넣기도 했고, 때로는 여러 번 빈수저를 꽂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음에도, 내 마음은 동나버려 비어버릴 때도 있었고,
때로는 그의 수저를 의심하며 빈수저만 꽂다 보니, 가득찬 내마음에, 공허한 그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많아질 수록 빈수저를 꽂는 일이 많아졌다. 분명 그랬다. 그러고선 더이상 줄 것 없는 그가 떠났을 때,
"이제는 헤어지고도 아파하지 않는 법을 알게되었다고, 성숙했다고, 헤어지기 전에 이별하는 법을 배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프지않았던 이유는, 덜어낸 내 마음이 적어서였다. 다시 메워야할 내마음의 빈자리가 적어서였다.
When : 2008년 08월 24일 19:00
Where : 미로스페이스 (광화문)
(★★★☆)
이스라엘 영화를 또 만났다.
이번 작품은 '칸느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에 빛나는 <젤리피쉬>.
'황금카메라상'은 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 '황금종려상'과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가능성 있는 신예 감독에게 주어지는 상이라고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이 영화를 감독한 '에트가르 케렛' 감독에겐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이었음을 밝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뭐 이제는 영화에서 다수의 주인공이 등장하여 각자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펼쳐가다 중첩되는 그런 스토리 라인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신예 감독의 데뷔작임을 생각해볼 때, 세명의 주인공,'바티야(사라 애들러)','조이(마네니타 드 라토레)','케렌(노아 크롤러)' 3명의 여성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가지고 있는 작은 소망들이 각각 펼쳐지다가 하나의 완결된 주제로 모아지는 어려운 이야기를 잘 완성시켰다고 생각한다.
대략적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어릴적 부모의 이혼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결혼식장 웨이트리스 '바티야'는 남자친구의 이별을 통고를 받고도 그를 붙잡을지 말지 고민할 만큼 사람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렇게 답답하기만한 일상 속에서 하루는 바닷가 해변에 앉아 있는 그녀늘 향해 한 아이가 다가오는데, 무엇을 물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해맑은 아이. 우여곡절 끝에 주말동안 그 아이를 보호하게된 '바티야'
필리핀에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인 '조이'는 히브리어를 잘 하지 못하고, 필리핀에 두고온 아들을 생각하며 아기를 돌보는 유모를 하고 싶지만, 주어지는 일은 노인들을 간병하는 일 뿐이다. 더군다나 그녀가 일을 시작하려하자 이미 세상을 떠나기까지 하는데, 그런 그녀에게 연극인 딸을 둔 괴팍한 노인을 도와주는 일이 주어지고 히브리어도 못하는 그녀가 못마땅한 노인은 '조이'를 귀찮아한다.
행복한 결혼식 후, 카리브해로 신혼여행을 떠나려던 신부 '케렌'. 화장실 문이 고장나 뛰어넘어나오다 그만 다리가 골절되고 비행기를 탈 수 없게된 그녀는 가까운 해변으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는데 가는 방마다 맘에 들지 않는다. 바다가 보이는 스위트 룸은 이미 여류 작가가 묵고 있는데, 우연한 일로 남편과 그 작가와 가까워지자 마음이 불안해지는 '케렌'.
이상이 대략적인 발단 까지의 줄거리.
세 개의 이야기가 이리저리 중첩되면서도 이야기의 맥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첫번째 이야기의 '바티야'는 아직까지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10대의 소녀'의 모습, 아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내면에 자아를 억누르고 있던 무의식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갖게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두번째 이야기의 '조이'는 한 사람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모습, 다분히 봉건적이긴 하나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가족의 부양이라는 의무감으로 둥둥떠다니는 '해파리'처럼 부유할 수 밖엔 없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 주는 또다른 '어머니와 자식'의 모습의 노인을 만나고 삶의 희망을 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고,
세번째 이야기의 '케렌'은 이제 막 사랑을 이루어 가려는 '20대의 여성'으로서의 모습, 때로는 한 사람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서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내용으로 파악했다.
자칫 이런 나의 판단이 다른 분들의 감상에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구성상 하나 하나 짚어가며 내용을 따라간다고 해도 보는 사람마다 감상이 달라질 여지가 많이 있고, 내 판단이 결코 옳은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암튼,
위와 같은 이야기들이 매우 감성적인 색감과 함께 예쁜 영상으로 펼쳐진다. 또한 제목의 설정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다소 상징적인 표현들이나 대사들 독백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서 영화의 맥을 잘 짚어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되어있다.
세명의 주인공들이 모두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의 가치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꿀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그녀들의 삶에 공감했던 관객들이 많았던지 뒤쪽에서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제목 '젤리피쉬'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쉬우면서도, 삶을 부유해다닐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삶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겠고, 영화에서 울려퍼지는 '라비엥로즈(장미빛 인생)'는 그녀들의 삶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으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 하면서,
최근 두 편의 이스라엘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이스라엘에 유아 실종, 노인문제,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문제가 많은 것인지 두 영화 모두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고, 화면에서 느껴지는 건조한 모습의 긴장감 흐르는 도시의 풍경은 이스라엘의 현재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슬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선입견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When : 2008년 08월 23일 16시 50분
Where : 씨네큐브 (광화문)
(★★★☆)
황혼에 접어든 이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는 그리 드문 소재가 아니다.
인생의 많은 시기를 지내온 연륜과 그 연륜에서 묻어나는 깊이있는 시각들, 그리고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영화들은 여전히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해주고, 때로는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제시카 텐디' 할머니와 '모건 프리먼'의 속 깊은 우정.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캐시베이츠'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주는 '제시카 텐디'할머니의 사려 깊음이 그러하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도 여러가지 이슈가 되었던 <죽어도 좋아> 같은 작품도 있다.
그러나 <라벤더의 연인들>은 '사랑'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위의 영화들과 좀 다른 방식을 취한다.
한 번의 사랑을 전쟁으로 잃어버리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자넷(매기 스미스)'에게는 '우슐라(주디 덴치)'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이 여동생은 한번도 사랑을 느껴보진 못했지만, 언니와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소소하게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날 그녀들은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 젊은 청년 '안드레아(다니엘 브륄)'를 발견하게되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이 청년을 간호해주면서 잔잔하기만 하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우슐라'가 '안드레아'에게 연정의 마음을 품게 된 것. '자넷'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우슐라'를 보면서 걱정스런 마음을 품게 되는데, 그때 마을에 휴가차 방문하고 있던 젊은 예술가 '올가(나타샤 멕켈혼)'가 나타나면서 '안드레아'가 다름아닌 무명의 재능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였음이 밝혀지게 되는데...
뭐 이정도가 대략의 줄거리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생의 영원한 감정인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이가 많은 여인'이 '손자뻘 되는 젊은 청년'에 대해 연모의 정을 품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루기 힘든 사랑이야기라는 것이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설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그리고 실제로 '데미무어'와 '에쉬튼 커쳐'의 커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게 불가능한 사랑은 아니지만,
영화에서도 나오듯
'우슐라'는 자기가 사는 동네는 거의 벗어나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자신의 삶의 영역을 바꾸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랑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숨겨야만 하는 그런 사람인 반면,
'안드레아'는 새로운 대륙인 '아메리카'에 가는 것을 꿈꿀만큼 앞으로의 사람에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한마디로 꿈꾸는 청년이라는 것에서 이들의 관계가 근본부터 어긋나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된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막을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향한 마음을 막을 수 없는 '우슐라'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 할 줄 몰라서 방황하고, 언니 '자넷'은 그런 동생을 도와주기위해 노력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이 영화 역시도 많은 곳에서 상영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결말까지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므로.. 영화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으면서 마무리를 하자면,
이 영화는 완전하다 못해 싱싱하기까지한 '젊음'과 젊지만 극복하지 못할 세월의 무게를 지지고 있는 '성숙'이 만나서 일방적이지만 절제된 사랑의 감정을 보여주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
이렇게 스스로 절제해야만 하는 사랑의 마음을 '고리타분'하다거나 '구식'이라는 표현으로 깎아내린다는 것은 매우 온당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므로 그녀의 사랑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주디 덴치'여사의 가슴떨리는 첫사랑의 연기는 다른 누구에게 배역을 맡긴 대도 절대 할 수 없을 만큼의 아름다운 연기를 보여주어서, 보는 나 마저도 안타까워 주먹을 쥐게 만들었으며, 거짓말을 좀 더해 '16세 소녀'의 가슴앓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어서 박수가 절로 나왔다.
옆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동생을 아끼려하는 연기를 표현한 '매기 스미스'여사의 연기도 매우 좋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두 노년의 여성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중요하므로 이 둘의 연기가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
'안드레아'의 직업이 바이올리니스트다 보니 많은 연주곡들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끝부분 클라이막스 때, 연주되는 'Fantasy For Violin and Orchestra' 는 '조슈아 벨'과 '로얄 필하모닉'의 연주로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곡이었다. ( 이 노래는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에도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한곡으로 영화의 모든 것이 표현되었다고 해도 무방할만큼 영화의 모든 것이 그 한 장면속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원제 'Ladies In Lavender'를 '라벤더의 여인들'이 아닌 '연인들'로 번역해 놓은 걸까...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한다는 '레이먼드 카버'를 처음 알게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통해서 였을 것이다. 아마도 어느 에세이에선가 영향을 받은 작가를 알려달라는 질문에 아마 '레이먼드 카버'를 언급했었고, 그가 단편 소설을 주로 쓰는 사람이라는 것. 그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은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굉장히 편협한 독서를 하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과감하게 책에 돈을 마구 퍼부을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던 '학생' 시절이라 그냥 그렇게 기억만 하고 넘어 갔더랬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김연수'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된 얼마 전, 그의 번역으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라는 단편집이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김연수'라면야..믿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구입한 책.
구입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찾아 읽어보았더니, 아주 괜찮은 책이라는 평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사실 나 자신은, 사람들의 그러한 감상평, 서평들을 읽으면서 모두가 거의 비슷한 말들로 '레이먼드 카버'를 칭송하기에 도대체, 얼마나, 뭐가 대단하기에 호들갑일까.. 하는 건방진 생각으로 책을 잡은 것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읽고 난 지금은 그들의 그런 평가에 십분 동의하며 얼른 다른 단편집도 구해서 읽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조금만 검색해보면 알 수 있겠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글은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내서 미사여구도 거의 없는 간단하고 평이한 문체로 담담하게 서술해나가는데(이런걸 '미니멀리즘' 이라고 한단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결말에 이르고, 딱히 반전이나 절정같은 부분도 없으면서 읽고 난 뒤에는 긴 여운을 남겨준다는 것이 독특했다.
12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애정이 식어버린 부부' 이거나, '타인과 잘 교류하지 못하는 개인주의적 인물' 혹은 '알콜 중독으로 파탄을 맞는 인물'이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매우 무료하고 무언가 톱니가 맞지 않는 기계들처럼 겨우 겨우 지탱해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정상적이었던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까지 오게된 과정을 생각하면서도 현실의 비극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버티고 있는 그런 인물들이다. 한 마디로 자신이 어디가 삐뚤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이 '삶의 아주 작은 계기'로 인하여 (실제로 소설 속에서 그들은 그런 계기가 되는 사건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안에 무엇인가가 달라지게 되는 것을 느끼고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을 매우 건조하고 단단한 어조로 '레이먼드 카버'는 표현해내고 있다.
때문에, 글을 읽는 도중에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이럴까?' 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다가 허무하게 툭 끊어지는 결말을 만나곤 적잖이 당황한 적이 많았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엉킨 실타래는 이미 풀려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었달까?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 40여 페이지를 읽고 난 다음, 다음 이야기를 읽기에 앞서 책을 덮고 잠시 동안이나마 생각을 했던 적이 자주 있었다.
작가도 언급했듯이, 이 소설집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맨 마지막에 실려있는 표제작 <대성당>, 그리고 <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등이 아주 좋았다.
단편소설이 호흡이 길게 연속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잠자기 전에 머리 맡에 두고 한 편씩 읽고 자면 참 좋을 듯한 소설집. 강추입니다.
<깃털들> 한 부부가 남편의 직장 동료의 집에 초대 되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공작새'의 깃털을 하나 받아 온다는 이야기
<체프의 집> 남편의 알콜중독으로 잠시 결별했던 부부가 '체프의 집'에서 만나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던 도중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는다는 이야기
<보존> 실직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던 한 여자네 집에 냉장고가 고장나고 고장난 냉장고를 사기 위해 경매를 알아보게 되면서 잃어버렸던 과거를 찾아간다는 이야기
<칸막이 객실> 이혼한 한 남자가 몇 년만에 아이가 있는 스트라스부르로 여행을 가다가 아이에게 줄 선물도 잃어버리고, 열차도 무언가 잘못되면서 자신의 본 마음을 알아간다는 이야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한 아이의 생일날 케익을 준비한 부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에 아이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데, 빵집 주인이 건네주는 빵 한조각에 위로를 받게 된다는 내용.
<비타민> 비타민을 파는 아내를 둔 남자가 외도를 저지르다 괴한들을 만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
<조심> 알콜 중독인 한 별거남이 귀에 무언가가 막혀 잘 들을 수 없게되고 할 이야기가 있어 찾아온 부인은 그의 귀를 치료해주지만 정작 할 말은 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이야기
<내가 전화를 거는 곳> 알콜중독 치료센터에서 만난 '나'와 J.P라는 사람은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지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면회를 온 J.P의 부인과 인사를 하고 '나'도 '나'의 부인, 애인에게 전화를 한다는 내용.
<기차> 한 남자와 거칠게 이별한 한 여자가 기차를 타고 도시를 떠나기 위해 역을 찾았다가 이상해보이는 커플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
<열> 갑작스레 부인과 별거한 한 남자가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어렵사리 구하게 되고 몸에 이상한 열이 난 후, 깨어나서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는 무언가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
<굴레> 농사일을 지을 수 없어 쫓겨오다시피 한 한 가족이 도시에서 일자를 구하고 어렵사리 살아가다가 남자의 괜한 장난으로 머리를 다치게 된 후 말에게 씌우는 '굴레'만을 남겨둔채 떠나버리는 이야기
<대성당>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의 방문을 받게 된 남자는 매우 못마땅해 하나 같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맹인에게 TV에서 나오는 '대성당'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벌어지는 놀라운이야기.
어제는 놀토였습니다. ^^ 내내 놀다가 갑자기 규칙적인 일과생활을 하려고 하니 일주일이 참 고단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런 한 주를 보내고 반갑게 찾아온 놀토라 뭔가 재미나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아, 물론 주초부터 <젤리피쉬>, <라벤더의 연인> 두 편의 영화를 찍어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간이 어중떠 중간에 뭔가 할 일이 필요했죠.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으로 열린다는 <세계 미술 거장展>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딴에는, 방학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니 애들도 없고, 8월 31일까지만 한다고 하니 끝물이라 한산하겠다 싶었죠.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든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에 부모님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고단했습니다.
전시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 저문을 지나가면 정말 뭔가 있을 듯. 하지만...
입구에는 이렇게 멋진 전사지가 붙어 있습니다. 좀더 잘찍을 수 있겠지만, 아직 기술이 모자라서 사람들 피해 찍느라 이모양입니다. 실제로 보면 좀더 멋있죠.. 이 문을 보고 왼쪽으로 꺾어지면 그때부터 전시가 시작됩니다.
안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더 많은 것들을 보여드리진 못하지만, 이 전시회의 제목은 "세계 미술 거장展", 부제가 '인상파에서 팝아트까지 판화로의 여행' 이렇습니다. 아주 작게 저기 써있는 거 보이시죠?
그니까 실상은 판화가 대부분이다 이거죠... 그래서 몇몇 유명한 작가의 이름만을 생각하시고 찾아가신다면 실망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말 그대로 19세기 낭만파 회화 부터 20세기 팝아트까지를 쭉 훑어오면서 한 작가당 많아야 3~4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니까요..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도 많았구요. ^^;;
전시장은 지하, 내려가는 계단 장식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더군다나 미술사조별로 시대순에 따라 배치되어 있기도하고, 한 작가의 작품경향을 느끼기엔 작품수가 너무 모자라는 까닭에. 전시를 크게크게 보면서 표현양식의 변화와 같은 부분에 초점을 두어서 감상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전시장의 3분의 1 가량은 스페인 작가방, 라틴 대가방, 이렇게 나눠놓고 몇몇 작가들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저와 같이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그다지 와닿지가 않아서 "속았다! 이름만 거창하지 알맹이가 없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그래도 저와는 달리 열심히 관람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학 숙제와 같은 것때문에 억지로 온 것 같은 관람객들이 많아서 쭉 줄지어 지나가면서 '한번만 보고 가면 되지' 라는 식의 관람객이 많았던 건 쫌... 때문에, 유명 작가 그림 앞에서는 정체현상이 일어나고 좀 유명하지 않은 작가 앞에서는 거의 머물지않고 지나가곤 하는 그런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 식의 관람이 과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사실 뭐 저라고 별다르랴 싶어서 생각을 그만 두고 처음 부터 다시 돌면서 눈여겨 두었던 작품을 다시 한 번 보는 걸로 관람을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나마 전시장 입구에 걸려 있는 "들라크루아"의 <어미호랑이와 놀고 잇는 아기 호랑이>와 "살바도리 달리"의 <낭만시대 : 4개의 천국의 꿈>, 그리고 작가가 기억나지 않는 <아침의 정사>가 좋았습니다.
이렇게 예쁜 배경으루다가...
커플 촬영석
전시를 다 마치고 출구로 오면 작가들의 싸인을 크게 확대해서 붉은 바탕에 써 놓았는데, 피카소가 제일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고, 이 벽 뒤쪽으로는 "리히텐슈타인"의 모조작이 걸려 있어서 그 앞에서도 사진을 담아 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저번 "신정아 사건"으로 "리히텐슈타인"이 많이 알려진 탓인지 여기 저기에 모조작이 걸려있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시간은 3시쯤 되었고, 영화시작은 5시니 뭘하기도 어정쩡한 시간이라 영화관 앞에 있는 "투썸 플레이스"에 가서 커피나 마시자고 생각했습니다. 조만간 포스팅하겠지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은 정말 "It's really something!" 입니다. 탄탄한 문체 속에 일상의 미학이 담백하고도 명징하게 녹아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구체적 언급을 하지도 않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일상의 분위기를 오감으로 체험하게 해줍니다.
가끔 자연스레 이런 배치가 나오기도 하지요.
여튼 그렇게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영화를 예매할 때 눈여겨 두었던 식당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미로 스페이스>가 있는 "가든 플레이스" 앞에 있는 찌개전문점이었는데요. 들어가자 마자 주인아주머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그래서 마주 인사를 했더니
새학기를 맞아 머리에 힘좀 주었더랬다. 미용실을 찾았더니, 이름도 어여쁘신 "태희"선생님이 그러신다.
"어머, 오셨어요? 전에 반응 어땠어요?" "아..네.. 다들 괜찮다고 하던데요..^^;;" "그럼 또 펌 하실거에요?" "네. 그러죠 뭐." "전처럼 해드릴까요?" "아뇨, 금방 풀렸더라구요. 좀더 강하게 해주세요." "괜찮으시겠어요?" "네에~"
하여 좀더 강하게 힘을 주었더랬는데, 마침 개학날에 비가 내린 거다.. 관리에 어설픈 나는 대충 만지고 출근을 했는데, 채 빠지지 않은 약기와 습기가 결합하여 아주 꼬불꼬불한 모양으로 세팅되었던 걸 몰랐던 거다...
그래서, 하루 종일 학교 건물이 들썩들썩 할 정도로 내 머리는 이슈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자연스런 웨이브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시끄러웠다.
"아줌마 같아요~ 샘~" 이런 말도 들었고, "모짜르트 같은데요?" 이런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말들.. 개중에는 "어린왕자! 어린왕자!" 라는 듣기 좋은 말도 있어서 올 가을에는 빨간색 목도리를 구입해 볼까하는 착각어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교감샘은 지나가는 나를 잡고 부르시더니, "파마했어요?" "네... 머리 숱이 너무 없어서요.." "아.. 네" 하시면서 책으로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가신다.. 신경쓰인다는 거겠지..ㅋㅋ
암튼, 이러 저런 반응들 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언젠가도 잠깐 이야기했던, "권 선생님" 개학 후, 이틀 정도 지나서였던가.
"샘, 확실히 젊어 보이네~" "아, 예....^^;;"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게 아주 보기 좋아요." "감사합니다. ^^"
저렇게 따스하게 말씀해주시는 권 선생님이 나는 참으로 좋다. 후후
어제는, 영화시간을 기다리면서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는데, 정말이지 산뜻한 것이 참으로 재밌었다. 12개의 단편 중, 가장 대표작이고 작가가 아낀다는 <대성당>을 먼저 읽었는데, 마치 예전에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읽고 느끼던 단편소설의 재미를 느꼈던 때의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쁜 마음 또한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다.
오늘은 또,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인지, 커피가 아주 맛있는 것이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곧 가을이 올 것만 같다. 후후후. 이렇게 뭔가 기대를 만드는 비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이다.
기다림이 있는 시간, 만남이 예정되어 있는 기다림은 설렘과 초조함이 함께하지만, 만남이 예정되어 있지않고 대상도 불분명한 그냥 막연한 기다림,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절대 실망할 일도 없는 무한한 기다림.
요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런 시간들인데, 마치 한적한 시골 우체국 앞에서 받을 사람도 정해놓지 않고 쓰는 엽서 한 장과 같은 여유로운 마음이 드는 이 시간이 나는 참으로 좋다.
* When : 2008년 08월 21일 20시 05분
* Where : YAWOORI14(천안)
(★★★☆)
역시,
프랑스 로맨틱 코미디는 나와 코드가 딱 맞는다.
아침부터 선선하고 하늘이 너무나 좋길래, 끝나고 뭔가 재밌는 일이 없을까 하고 찾다가 발견한 영화.
사실,
<라벤더의 연인들>이나 <여름궁전>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찾은 터라 로맨틱 코미디 물이라 볼까말까 망설이다 예매.
보통 헐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물이 사랑하면서도 실랑이를 벌이다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꿈과 같은 연애에 골인하는 환타지와 같은 면을 강조해서 가슴을 땃땃하게 데워주는 효과를 가진다면,
프랑스식 로맨틱 코미디물은 참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춘다고나 할까?
헐리우드 영화가 우연이나 운명에 기대서 깜짝쇼를 펼치는데 능숙하다면,
프랑스 영화는 필연이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건전개에 의해 깨달음을 주는데 익숙하다.
그래서 헐리우드 영화는 꿈과 같고 프랑스 영화는 있을 것만 같다.
이 영화 <발렛>은 '프랑스의 노팅힐'이라는 식의 홍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맘에 들지는 않지만, 한편 그렇게 보이기도 하므로 간략하게 줄거리를 말하자면,
발렛주차요원으로 일하는 보잘것 없고 생긴 것도 그러저러한 청년인 '피뇽'은 어렸을 적부터 친구였던 '에밀리'에게 청혼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에밀리'는 그를 가족 이상으로 느껴 본 적도 없고, 서점을 차리기 위해 빌렸던 대출금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인지라 이러한 '피뇽'의 진심이 귀찮기만 하다.
실망한 '피뇽'은 그러나 한 변호사에게 혹하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델 중 한명인 '엘레나'와 계약 커플을 해달라는 것. 이는 '엘레나'의 애인이었던 대기업 회장이 자신의 외도가 들통나자 아내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벌인 계획.
'엘레나'도 회장의 마음을 시험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인 상태고, '에밀리'의 대출금을 갚아주기 위해 '피뇽'도 그 제안을 받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도입부.
대충,
보잘 것 없지만, 때묻지 않은 청년인 '피뇽'은 '엘레나'를 순수한 진심으로 감동시켜 '에밀리'와의 결혼에 도움을 받게 되고 '엘레나'도 진실한 사랑을 알게되고, 나쁜 사람인 회장은 벌받고 한다는 뻔한 내용이지만,
회장 부인과 회장의 머리싸움, 그 안에 엉뚱하게 전개되는 사건들, '에밀리'와 '피뇽'의 밀고당기기 등등이 탄탄한 이야기 속에 짜여져 있어 한편으로는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끝날 땐 통쾌하기도 해서 매우 재밌게 보았다.
또한,
중간중간 조연급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매우 볼만하고, 발렛주차요원으로 등장하다보니, 페라리, 푸조, BMW, 아우디를 비롯한 각종 최신 차량들이 소품으로 쓰인 것도 볼 재미를 안겨준다.
또한 '엘레나'의 직업이 모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패션쇼의 한 장면이 나오게 되는데 이 장면 또한 실제 패션쇼 장면으로 나는 잘 모르겠지만. '칼 라거펠트' 라는 디자이너와 그가 연출한 샤넬 패션쇼를 볼 수 있다는 재미가 있다. (실제로 그 패션쇼 장면은 멋졌다!)
회장역을 맡은 배우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배우였는데 알고보니 <제8요일>에 출연했던 '다니엘 오데이유'였고,
회장의 부인 역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였다.
따른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데 없이 좋았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서, <노팅힐>이나, <러브액츄얼리> 와 같은 꿈과 사랑이 가득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가시면 쫌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귀여운 캐릭터와 유쾌한 코미디에 러브스토리가 양념으로 곁들여진 영화 한 편 보러가신다고 생각하면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작품..
개인적으로 난 좋았음..
기억에 남는 대사 한마디..
'엘레나'와 가까워진 '피뇽'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건 마치 발렛파킹과 같네요. 가슴떨리게 황홀하지만 내차는 아니죠."
1권에 이어진 '진중권'의 미학 강의. 1권에서와 같이 2권에서도 알기 쉽게 근대 미학의 개념들에 대해서 '설'을 풀고 있다.
먼저번에 등장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는 여전히 함께 걸으면서 '일원론'과 '이원론'의 입장에서 때로는 '정합설'과 '대응설'의 입장에서 혹은 '현실'과 '가상'이라는 입장에서 근대 미학의 논쟁거리들을 열심히 대변해주고, 작가 역시 최대한 독자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에서 이야기하려는 태도로, 약간의 농담까지 곁들여가면서 쉽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2권에서는 1권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마그리트'를 등장시켜 근대 미학의 관점들을 잡아주고 있는데, 근대 미학이 추상화, 구성화, 혹은 설치미술, 혹은 퍼포먼스로 나아가고 있는 이유를 미술의 '의미정보'와 '미적정보'의 측면에서 이해가 되도록 설명해주고 있으며, 1권에서 채 밝혀지지 않았던 '에셔'의 그림들의 의미들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금 더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1권이 미학의 기원에서 부터 고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까지의 변천사를 훑어주었다면, 2권에서는 1권의 내용을 기초로해서 근대의 미학 개념들과 바탕이 된 철학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미학'이라고 말하면 미술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예술은 '미'라는 것을 추구하고 있고, 그 '미'를 표현 하는 수단에 따라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고 '미술'이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인류가 참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예술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라는 것이 바로 '미학'이라는 관점에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미'라는 것을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때문에 예술가들은 끝없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 한 시대에 풍미한 관점을 뒤집고 다시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책의 이야기대로 하자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 절대진리라고 하는 선입견이나 정보에 사로잡혀 규정하게 되는 것이고,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자체가 진리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모두가 '헛소리' 일 것이다.
사실, '진중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의 생각으로 끝까지 달려가게 되는데, 언뜻언뜻 공부할 때, 접해봤던 개념들이 나오면 이해가 되다가도 잘 모르는 개념이 나올 때면, 그냥 흘러가버리는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친절한 설명에 책 자체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역시나 탁월한 말발과 재치있는 유머, 독자를 좌지우지 하는 듯한 작가의 구성력을 통해서 읽기는 다 읽었는데,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왕 읽을거면, 1권에 연이어서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또한, 작년에 '모네'와 '마그리트' 전시회에 다녀올 때, 막연하게 느낌만 가지고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신기하니, 특이하니.. 이런 이야기만 나눴었는데, 물론 그런 느낌도 중요하지만, 좀더 알고 공부하고 가면, 보다 많은 작가와의 소통,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브제'라는 용어의 뜻을 정확히 모르면서도 게을러서 알려고도 않았는데, 책을 읽고 나서 나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도 나에겐 작지만 커다란 소득이었다고 생각된다.
개정되기 전에는 2권으로 출판 되었던 탓인지 2권 뒤에 '다시 별밭을 우러르며'라는 에필로그 비슷한 글이 붙어 있는데, 이 글은 참으로 문학적이다. 무려 500페이지가 넘게 머리가 휙휙 돌아가도록 논리적 사고를 이끌다가 마지막에 감성 넘치는 후기를 달아놓아서인지 참으로 멋진 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밀려오는 신간의 유혹이 강하다.. 라고 이야기 하고선, 결국, 뽀로록 서점에 달려가서 책을 또 질렀다..
원래 머릿속으로는
'읽으려고 맘먹었지만 아직 사지 않았던 <강의>를 사고, 선진양에게 추천받은 책 한권 사고, 소설도 한권 사주어야지... 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이 있군...좋았어.'
이러고 교보에 들어갔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야 없지 않은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동안 사고 싶은 책은 너무도 많아져 버렸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도 괜찮을 것 같고,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도 사고 싶고, 어라? <열하 1780> 저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미인도>를 보려면 <바람의 화원>도 봐야하지 않을까??'
자꾸 헤매만 다니다 또 고르지 못하고 나올 것 같아서 결국 고른 것이 5권. 신영복 - <강의>, 황석영 - <개밥바라기별>, 레이먼드 카버, 김연수 역 - <대성당>, 지승호, 공지영 - <괜찮다, 다 괜찮다> 진옥섭 - <노름마치>
꼭 읽어보려 했던 책이 대부분이라 나름 만족하는 선택인데, 아.. 책을 너무 많이 사는 것 같다.. 원래, 음반을 사거나, 영화/공연을 보거나, 책을 사는데에는 돈을 절대 아끼지 않는 성격이라 지르긴 했는데, 요새 문화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내 삶의 질이 과연 높아지고 있는 건지.. ㅋ 그렇다고 믿을 밖에...
하여간.. 그러고 오늘 학교에 와서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 또 두 권을 질렀다.. 흑... 언젠가는 살 책이었긴 하나.. 왜 덜컥 사버린 걸까?? 혹시 쇼퍼홀릭?? 나도 그런 걸까??
<완득이> 아주 재밌는 성장소설이라고 강추 받았다.. 한 명이 아니라 3명에게서 한꺼번에.. 재밌겠지..ㅋㅋ <우리동네 꽃담> 아주 좋은 느낌의 책이다.. 아껴 읽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뭐.. 무리는 했어도, 책은 사는 순간 반은 읽은거라는,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선진양의 말을 믿어야지..ㅋㅋ 정말 사실이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화하여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인생>이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이다. 작가 '위화'는 <허삼관 매혈기>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유명한 작가이며, 90년대 초반에 다수 소개되었던 중국문단의 한 작가로 이미 오래전에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사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은지도 오래되었고, 물론 지금도 그리 깊게 읽지 못하지만 그때는 그냥 흘러가듯 이야기를 따라 읽기만하던 때라 별다른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피를 팔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슬프다 못해 처연한 감정만이 오롯하게 가슴 안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가깝지만 생경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뭔지도 모르고 넘어갔던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다이 호우잉'의 <사람아, 아 사람아>에 대한 감동이 훨씬 깊게 남아 있어서 그와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펼치는 '위화'의 이야기가 너무 가볍게 느껴졌었는지도 모른다.
뭐 여튼,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메일로 도착한 한 인터넷서점의 서평 한 구절이 두 눈에 스며들어 앞을 흐리우는 느낌이 들기에 서점에 들어가 그 구절을 찾아 앞 뒤 한 두 페이지를 읽어본 후 바로 구매를 결정하게된 소설이었다. 다소 감상적이어서 창피하긴 하지만 그 구절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도대체 어떤 사연이 묻어 있길래, 여자는 죽어가면서도 저런 완전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 저렇게 일방적으로만 보이는 지고지순한 사랑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시련을 겪게될 인물들의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일까. 매우 궁금했다.
결론적인 이야기기이긴 하나, 이 소설의 원제목은 <人生(인생)>이 아니라 <活着(살아간다는 것)> 이다. 아마도 우리 정서에 맞게 적당히 고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각고의 노력이 있었겠고, <살아간다는 것> 이렇게 제목을 썼더라면 소설로서의 매력이 좀 떨어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원제목 그대로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았나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살아간다"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간다는 능동성이 담겨 있는 말이다. 허나, 과연 이렇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적어도 나에게만은 삶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로 생각되고,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아! 또 하루 살았구나!"는 식의 삶.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강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결국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나의 인생이 이러하였다"라는 식의 회한이 묻어나는 말이 아닌,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이지.."정도의 깨달음이 묻어나는 것이므로 <活着(살아간다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일 것 같다는 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역시 서두가 길었지만, 간략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인생>은 한 젊은이(안 이야기에서 청자가 되는)가 시골마을에 노래를 채록하기위해 머물다가 다른 시골사람들과는 달리 보이는 한 노인을 만나 그 노인의 인생사를 듣게 된다는 밖이야기와 그 노인이 이야기하는 자신의 인생사로 구성된 안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식 소설이나, 총 5장으로 구성되어 한 장이 끝날 때쯤, 한번 씩 바깥이야기로 넘어와서 숨을 고르게 만들어주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바깥 이야기는 안 이야기를 좀더 현실감있게 보이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도에서 그치므로 더는 이야기 할 것이 없고 본격적으로 안 이야기를 언급하자면, 젊은 시절 잘나가던 가문의 재산만 믿고 헛된 삶을 살던 한 젊은 청년이 선조 대대로 내려오던 토지 중, 아버지가 젊은날의 방황으로 잃어버렸던 반 이상의 땅을 찾고자 노름을 하게되어 가문의 모든 토지를 빼았기게 되고 몰락한 가문에서 곁에 있던 가족들 마저 하나 둘 씩 잃게되고 결국에 혼자 남게 된다는 이야기가 중심이야기 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에서 그친다면, 무슨 인과응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고전의 그것과 유사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 문제는 이 주인공이 이미 젊은날에 그동안의 잘못을 깨달았고 반성하였으나 한번 넘어버린 운명의 문턱은 올라가기엔 높기만 하고 노력을 하면 할 수록 더 깊은 운명의 파고를 맞이하게 되는 데에서 고전의 그것들과 시사하는 바가 다르다. 또한 주인공 곁에는 무한한 대지의 모습 - 끝없이 포용적이고, 인내하고, 고요하게 울릴줄 아는 - 의 아내가 있는데 그녀의 그 무한한 사랑을 통해 인생을 악의 없이 원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지혜를 깨달아 간다는 것이 <인생>에서 말하고자 하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 한다.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끝없이 닥쳐오는 불행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삼국유사의 <조신설화>가 계속 떠올랐다. 승려였던 조신이 헛된 욕망을 품어 어여쁜 낭자와 결혼을 하고 세속의 영화를 누리는데, 세속적 기쁨이 커져갈 수록 재산의 크기도 줄어가서 결국 거지가 되고 자식을 잃고, 아내와도 이별하기로 약속하다가 꿈에서 깨어났더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더라는....
주제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헛된 욕망이나 운명 앞에 오만한 자에게 운명은 딱 그만큼의 댓가를 치르게 해주고 그런 어려움은 젊은 시절의 작은 차이에서 시작된다는 극히 일반적인 교훈. 한낱, 100년을 살 수밖에 없는 하찮은 존재인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은 오만하게 눈을 치뜨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겸손하고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교훈. 결국 인생을 살면서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는 내가 거두게 될 것이라는 교훈.
사실, 인정하긴 싫지만 살면서 때때로 운명은 우리 앞에 이와 같은 교훈을 넌지시 제시했다가 다시 감추고는 한다..
<인생>은 물론 살아남은 노인의 시각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훑어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노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내의 모습은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납득이 가지 않을 정도로 초탈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내의 모습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말없이 곁에 있은 것만으로도 옆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사랑에 대한 끝없는 신뢰를 보여주는 아내의 모습에, 만약 저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나또한 감화되지 않을 수 없겠다는 다소 이상적인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오래전에 영화도 보았었지만 '장이모우' 감독의 칸 그랑프리 수상 소식과 함께 계속적으로 수입되었던 <붉은 수수밭>, <귀주이야기>, <국두>, <홍등> 등의 영화와 함께 섞여 오로지 붉은 휘장과 붉은 깃발, 붉은 곡주 등의 기억만 가득한 영화라 매우 고전스럽게 뇌리속에 박혀있어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에 어둠의 경로를 탐색하기까지 한 소설...
무척 잘 된 소설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옛날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대로의 진득한 맛이 있지 않은가 한다.
아직도 컴만 켜면, 영화정보사이트를 헤매다 보고 싶은 영화를 발견하고는 흥분해서 예매를 한다.. 요새 눈길이 가는 영화는 "마틴스콜세지"와 "롤링스톤즈"가 함께 촬영했다는 콘서트 다큐멘터리 <사인 어 라이트>.. 오~ 소문으로만 듣던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어디를 봤더니 "비틀즈"는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신화를 써나가가고 있는 "롤링 스톤즈"라고 표현해놨더라.. 살아있는 신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볼 수 있다니.. 후후..
그리고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 그야 말로 좌충우돌 액션배우에 빠져든 스턴트배우들의 이야기. 목숨을 담보로하는 그들의 연기와 노력에서 어떤 진정성이 느껴진다.. 아마 눈물을 흘릴수도...
그 밖에도 <신기전>, <미인도>등의 영화가 매우 기대된다.. 왜 요새 외화는 볼만한게 없지?? 내가 모르나..ㅋㅋㅋ
여전히 책도 읽고 있다. 방학 때, 계획했던 독서량을 충분히 채우지 못해 여전히 읽고는 있지만, 나름 차곡차곡 쌓여가는 책들이 즐거울따름... 하지만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신간들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공지영", "지승호"의 <괜찮다, 다 괜찮다> 이거이거.. 무지 사고 싶다... 그 밖에도 알라딘 보관함에 쌓여 있는 15권의 책들은 언제 다 읽을까.. 하악하악 ... 힘내야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시사IN>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세상사를 폭넓고 깊이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좋은 잡지.. 그 잡지를 통해 알게된 "김현진"에게 매우 관심이 간다. 이번 호 (49호)에 실린 그녀의 모습은 처연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글을 상당히 잘쓰는 사람이기에, 혹시나 하고 책을 찾아봤더니, 오~나름 상당히 유명했던 사람이더군.. 하지만 책은 별로였다.. 아.. 즐거운 독서..
아. 이렇게 아직도 방학모드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괜찮겠지??
When : 2008년 08월 18일 20시 25분
Where : CGV(압구정)
(★★★☆)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드라마는 근 몇 년간 50분짜리 한 편을 제대로 본 기억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한효주"라는 배우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
그냥 또 예쁘장한 신인이겠거니...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드라마 "일지매"에도 출연했고, <투사부일체>에서 사고로 죽게 되는 여고생이 바로 그녀였다.
여튼, 그녀 때문에 영화를 본건 아니고, 엉성하게 짜여진 예고편을 보고 감독의 어떤 진심을 느끼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젤리피쉬>를 볼까 하다가 "한국영화를 사랑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본 것도 있다. 그런데 막상 예매를 해놓고 보니 별점이 괜찮은 거다. "CGV" 홈페이지의 평점은 극히 신뢰하지 않으므로 그렇다 쳐도, "맥스무비"에서도 8점이 넘고, "다음"에서도 마찬가지...
혹시 대박? 이라는 기대를 조금은 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대박까진 아니어도 꽤 알찬 영화 한 편을 보고난 느낌.
감독의 연출도 나름괜찮았고, 산만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도 잘 마무리 되었고, 특히 "한효주"의 연기는 무척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HD지원작으로 선정되어 5억 6000만원의 저예산으로 6주만에 찍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이만큼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인디영화들이 부지기수이긴 하나, 저정도의 예산으로 저기간에 상당히 알찬 영화를 만들었다는데 박수를 쳐주고 싶다.
영화는 말 그대로 여주인공 "하정"의 첫사랑의 기억과 느낌들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다지 능력있어보이지 않는 아버지, 사고덩어리 남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하정"은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대학에 늦게 입학하게 된 재수생.
지방대학이긴 하지만, 자취를 시켜줄 형편이 되지 않아 가족들은 모두 이사를 오게 되는데 우연히 마주치게 된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런데 그 남자가 우연히도 학교 앞, 헌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었고, 딱히 비전있어보이지 않는 이 남자에게 한없이 마음이 끌리는 "하정".
그녀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역시 쉽게 사랑이 이루어지진 않고, 진실된 첫사랑을 얻기 위한 "하정"의 가슴앓이가 이어지는데.....
여기까지가 도입부쯤 된다..
나머지는 영화관에서 확인하시기를 ^^
영화에서 주인공 "하정"의 귀여움은 바보스러울 만큼 순진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영화에서는 생략되다시피한 "하정"의 성장과정을 고려해본다면 나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름의 삶의 해법으로 깨달은 것이 남다른 긍정적 태도 아니었을까... 다소 무모해보이기도 하는 "하정" 모습들은 20살이라는 해맑음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녀의 밝은 모습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어설픈 귀여움의 연기를 "한효주"는 놀라운 시선처리를 통하여 이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조금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초점처리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 연기를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는 단순히 서투르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아마도 "한효주"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그 무엇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여튼, 그녀의 연기는 자연스러움이었다.
또한, 감독의 연출방식이 장면과 장면들 사이에 여백을 많이 주는 방식이어서 곳곳에 표현되는 정적인 화면과 그 안에 담겨지는 풍경이 따스한 옐로우 톤으로 표현되어 낭창낭창한 일본 멜로 영화의 모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의 허진호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쉽게 말해, 영상이 예쁘다는 것.
아마도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젊은 날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 그 자체였기때문에 관객의 감정을 자극해서 눈물을 기어이 뽑아내고야 마는 일본 멜로영화와 같은 클라이막스는 없지만 나름의 부드러운 결말의 방식을 취해 격하진 않으나 고개 끄덕이며 인정하게 하는 결말을 취한 것도 나름 괜찮았다는 생각이다.
중간 중간 극도의 센치함에 빠진 닭살돋는 대사들이 옥의 티긴 하지만 나름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를 일관되게 지켜 나간 것에 큰 점수를 주며, 영화가 잘 되어서 다음 영화까지도 지켜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한효주"라는 배우 또한 작은 발견이었다고 생각되는 괜찮은 영화.
일본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큰 기대하지않고 보러 가시면 의외로 괜찮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
When : 2008년 8월 16일 18시 50분
Where : CGV(오리)
(★★★★☆)
벌써 이 영화의 관람평을 쓰고자 한지 10번도 넘게 시도한 듯 하다.
하지만 얼마 쯤, 쓰다보면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아마도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나면 그냥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영화도 있고,
볼 땐, 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넘어갔다가 두고두고 남아서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도 있는데,
물론 이 영화는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누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어디였는지, 예고편도 보지 않았고 겨우 시놉시스 정도만 알고 덜컥 예매 한 이 영화는 그렇게 나에게 말못할 마력을 발휘하였다.
영화는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이스라엘에서 일하던 한 중국인 여인이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아이를 자신이 일하는 집에 두고 강제출국 당해버리는 당황스런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희브리어라고는 겨우 "나는 중국 어린이입니다." 밖에 할 줄 모르는 중국인 아이와 남편을 둘이나 전쟁으로 잃고 이혼직전에 있는 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미리"와의 어색한 만남.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불법체류자와 인종갈등, 외국인노동자의 문제 속에서 인종 간의 화해를 말하고자하는 영화라고 생각되는데, 안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더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가장 큰 축을 이끌어가는 것은 물론 "누들"이라 불리우는 중국아이와 그 아이들 도와주기 위한 "미리"와의 감정교환이지만, 그 큰 축의 곁으로는 몇 년간의 별거 생활을 정리하고 결국 이별에 합의하는 언니 부부의 이야기도 있고, 오랫동안 처제를 연모해왔던 "형부"의 이야기도 있고, 오래전 헤어진 언니의 진정한 사랑 "마티"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이 복잡한 갈등이 일어나게 된 원인에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기도 하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일일텐데, 처음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이에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머리 속에만 품고 겉으로 표현되는 언어에는 그것을 담아 내지 못한다.
그런 의사소통 불능의 관계가 "미리"가 "누들"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어 사전을 유심히 들여보게 되는 것과,
"미리"가 버리지 못한 사진을 두고 일어나는 "누들"과 "미리"의 짧은 대화와 같은 "타자 이해하기"의 과정을 통해 서서히 마음을 여는 관계로 발전하여 서로의 본 모습을 알게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런 발전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것으로 "누들"을 어머니에게 보내주기 위해 여러 가지의 방법을 알아보다 만나게 되는 이민국관계자는 소통 불능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그 사람에게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의 존재는 다만 사무에 불과할 뿐이고,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닌 다만 외계인처럼 생각될 뿐이다.
하지만 "미리"를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누들"은 작고 여리고 귀여운 아이였기 때문에 이들은 "누들"을 구하기위해 범법자가 될 각오를 무릅쓰고 "누들" 탈출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미리"는 형부의 마음을 알게되고, 언니는 형부와 진정한 대화를 나누게 되며, "마티"는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다.
영화 안에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처음 "미리"와 "누들"의 엄마-중국인 가정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짧은 영어로 서투른 의사소통의 과정을 보여주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나누게 되는 "미리"와 "누들", "누들의 엄마"의 대화는 별다른 자막이 붙지 않더라도 내용이 전달될 만큼 완전한 의사소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물론, 의사소통의 과정의 중요한 요소인 맥락적 추론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 부분이 적진 않겠지만, 타자와의 완전한 이해를 이룬 두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 감정전달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여튼,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영화는 현재 이스라엘에서도 문제시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통해 문제아닌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어쩌면 대외적으로 무척이나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민족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대변을 하고 있는 듯 느껴지는 영화지만,
두 배우의 따스한 연기와 더불어 현대인들이 무의식중에 곤란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의사소통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우회적으로 언급하여 다른 영화 못지 않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좋은 영화로 완성되게 되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문제를 상정하고 뻔한 결론을 향해 진행되어 가는 것 같지만, 신파성 가득한 문제의 해결방식을 유쾌하고 납득가능한 방법으로 설득력있게 진행시키고 있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잔잔한 여운을 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커다란 감동은 그 파고의 높이 때문에 크게 다가왔다 금방 사라져가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은은하게 밀려오는 감동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서 가끔은 삶의 방향을 바꿔주기도 한다.
상영하는 곳이 적어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보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가 잔잔한 바람을 일으켜 확대개봉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중권'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이 실체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었다. 사실 그냥 여기 저기에 찌라시처럼 흩뿌려져 있는 그에 대한 가십기사 거리들만 보아왔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건 그의 도전적인 말투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나 말할 때, 살짝 올라가는 오른쪽 입꼬리 때문일지도 몰랐다. 뭐 이렇게 파악한다는 것은 '형상'에만 매달려 '정신(본질,영혼)'을 보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미학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미'를 그냥 '주관적 아름다움' 정도로 믿고 살아온 범인이니까 어쩔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이래 저래 관심이 많이 가는 사람이 오래전에 쓴 책이 현재까지도 스테디셀러고 잘 팔리고 있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책이라고 칭찬도 자자하니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구입을 했다. 편견없이.
사실 '미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 따로 접해보지도 못한 분야라 책을 읽기 전에 어떠한 자세로 읽어야 할런지 고민부터 되었다. 밑줄을 좍좍그어가며 공부하는 자세로 읽어야 할지, 가볍게 '이런 생각도 있구나 ' 교양 입문서 형식으로 읽어야 할지....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모두 기우였다. 3권을 같이 구입한 탓에 붙어 있는 작가 노트의 몇 장을 넘겨보면서 '옳다구나, 내가 원하던 책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고, 1권을 읽는 내내 매우 흡족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따라서, 위 방법 중 내가 택한 방법은 가볍게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 한번 더 읽기 정도의 방법이었다. 공부는 안했다.
1권의 대략적 내용을 간추리자면, '미학'이라는 개념의 근원이 어디서부터인지 추적하기 시작하여 최근의 철학자 '헤겔'의 이론까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각 시기별로 큰 흐름과 그 흐름에서 중요시했던 개념들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다.
시작은 당연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부터 시작하는데, 이 둘의 사제지간이 정의한 세계의 구성 자체가 대립적이다 보니, 후에 나오는 많은 철학과 종교의 개념들도 누구의 이론을 따를 것인지에 따라 그 내용이나 형식이 달라지게 되는 모습을 고리타분하지 않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헤브라이즘부터 헬레니즘, 중세시대,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계몽주의, 합리주의, 분석철학 까지 이어져 오는 사상이나 철학의 큰 흐름을 한 권으로 끝낸다는 것은 무리이기도 하고, 또 그 가운데에서 '미학'을 정의하고 '미학'을 이야기 하는 부분만을 도려내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대학교 때 '문예사조사'를 공부하면서 생각했던 내용들을 다시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책은 크게 3가지의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한 가지는 일반적인 개론서와 같이 이야기하는 서술해주는 것 하나. 두 번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 세 번째는 판화가 '에셔'의 그림에 대한 설명.
이 모두가 서로 날줄과 씨줄처럼 연결되어 뒤에 나오는 파트에 대한 생각을 미리 워밍업시켜주기도 하고, 앞에 이야기한 파트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잘 맞는 바퀴가 소리없이 굴러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앞부분, 그리스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내용이 꽤 나와서 전에 읽었던 <그리스 로마신화(이윤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고, 중간부분 중세시대를 이야기 할 때에는 <장미의 이름(이윤기)>이 꽤 많은 부분 이용되어 그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읽지 않아도 똑똑한 사람들은 다 잘 이해했겠지만 말이다.
특히, 10가지로 나눠져 각 파트마다 하나 씩 제시되는 '에셔'의 판화들은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했고, 진중권 특유의 친근한 글쓰기의 형태는 강좌를 듣는 듯 재미있게 이어져서 책을 처음 잡은 뒤 한 번 정도 쉬고 끝까지 독파하게 되었을 만큼 재미있게 쓰여진 좋은 책이다.
물론 이 책에 제시된 이론이나 개념들은 전공자나 관련자가 아닌 바에야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겠지만, 밑줄을 그으면서 공부하듯 읽으려고 하지 말고 잡지 칼럼 읽듯이 몇번 읽다보면 좀더 편하게 읽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2권은 또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하다는 것과,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똑똑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굉장히 치밀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님 천재?
그리고,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 이상형이냐?'라고 물어봤을 때,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기가 태반이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책을 읽고보니 그 상황에는 청자와 나 사이에 커다란 오해가 존재하는데, 청자는 나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감각으로서의 '미'를 물어본 반면, 나는 머리 속에 들어있는 감성적 표상으로서의 '미'를 대답하려고 하니 전달이 안됐던 것이라는 거.. 그래서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ㅡㅡ;;
여튼, 요즘 우리들의 모든 생활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아름다움', '즐거움', '미'의 세계에 탐구하고 싶으시거나, 책을 통해 지적모험과 여행을 하고 싶으신 분, 예술과 눈꼽만큼이라도 관계되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해봐도 좋을 책.
When : 2008년 08월 10일 17시 55분
Where : 프리머스 시네마 (오산)
(★★★)
스타일상 범죄 수사물이나, 강한 남성들이 힘겨루기 하는 식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한 가지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한석규'와 '차승원'이라는 배우에 대한 애정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곽경택'이라는 감독에 대한 의미 찾기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
'한석규'라는 배우는 예전 <닥터봉>, <8월의 크리스마스>, <초록물고기>로 한창 물오른 연기력을 보여주다가 친형과 함께 'LJ필름'인가 하는 제작사를 차리고 연기와 영화에 대한 자기 자신의 과도한 애정과 집착으로 인해 인지도나 연기력 측면에서 하향세를 걷게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측면이 큽니다.
제가 영화자 관계자도 아니고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사실 <텔미섬씽>이 그의 연기력의 반환점을 찍은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후의 영화들을 보면, 1인 캐릭터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스토리와 도대체 절제라는 말을 모르는 듯한 '한석규'의 주체못할 포스(?) 발산과 함께 더 이상 그 무엇도 나올 수 없는 한계를 보였다고나 할까요...
완전히 한 사람의 관객의 입장에서 느낀 바일뿐이니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을 가능성이 많다는 뜻일 겁니다.
뭐 하지만, 그 이후로도 '한석규'가 출연한 영화는 '비슷한 연기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꼬박 꼬박 봐오고 있습니다. 그건 배우 '한석규'에 대한 애정이라고 밖에 달리 붙일 말이 없더군요..^^;;
'차승원'은 어느날 갑자기 '일찍 결혼해서 아이까지 가지고 있는 멋쟁이 모델'이라는 식의 이슈와 함께 혜성같이 등장하더니, 여러 가지의 쉬운 길도 있을텐데 연기력에 대한 왈가왈부가 가득한 영화 배우의 길은 선택한 행보도 신선하긴 했지만, 자신의 빛나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망가지는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 없이 여지없이 망가져주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감탄한 배우입니다. 그런 배우의 영화는 믿음이 가는 법이죠.
'곽경택'이라는 감독은 <친구>라는 영화 한 편으로 영화계에 충격을 몰고 오더니, 뭘 하든지 간에 뉴스거리가 되는 감독입니다. 저는 <친구>를 극장에서 보지 못하고 영화관에서 내려간지 한 일년 쯤 지나서 보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이 얘기했던 것과 같은 감동은 받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요. 아마 그 뒤로 800만 이라는 기록에 필적하는 다양한 좋은 작품들을 접한 뒤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튼, 그 이후에도 많은 논란을 뒤로 한채, 이 걸죽한 사투리의 감독님은 꾸준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 오셨는데, '정우성'의 이미지 변환을 꾀한 <똥개>라던가, 유오성의 1인 사투 <챔피언>, 여러나라를 돌면서 엄청난 거금을 들여 만든 <태풍>, 얼마 전에 개봉한 <사랑>까지... 누가 뭐라해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에 그의 전부를 긍정할 순 없지만 나름의 뚝심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하여튼 영화의 평점을 찾아보니 대략 7점 후반대로 매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 놀라울 것도 없지만, 돈아깝지는 않을 영화라는 생각에, 과연 '한석규'가 얼마나 어깨에 힘을 뺐을지, '차승원'이 <리베라 메>이후 악역을 얼마나 잘 소화해내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본래 감독이 <우리 형>의 '안권태'감독이었는데 '곽경택'이 합류해서 그 만의 색깔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포인트를 두어서 관람하고자 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딱 별 3개 정도의 영화였습니다. 두 명의 캐릭터 강한 배우를 중심으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진 가운데 한 명은 계속해서 계획대로 사건을 일으키고, 그를 막기 위한 다른 한 사람의 노력, 두뇌 게임이 전개되는 수사물이라고 생각하면 딱입니다.
큰 스토리의 흐름은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없었는데요. 이런 영화의 큰 재미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 관객마저 속이고 마는 극적 반전 이런 요소라고 볼 수 있겠지만 <눈눈이이>에는 그런 요소가 좀 부족합니다. 결론이 그렇게 될 것이라면, 차라리 '차승원'의 인간적 측면을 부각시키고, '한석규'가 거기에 감화될 만한 어떤 개연성을 부여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영화는 그냥 물흐르듯 흘러서 정해져 있는 결말로 진행될 뿐이더군요.
하지만 결말의 내용이 '배신당했다'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는 아니라서 기분나쁘지않은 웃음을 지으면서 극장을 나왔습니다.
'한석규'는 전 영화들 보다 상당히 어깨에 힘을 빼고, 나름 극을 이끌어가는 캐릭터로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전보다 얼굴표정도 가벼웠구, 자신의 연기력을 자랑하는 듯한 과도한 액션, 제스처도 많이 줄었더군요. 그러나 반듯하던 이미지가 갑자기 180도 돌변해서 악의를 부리는 몇 몇 장면들은 설명이 부족해서 역시나 튀어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너무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웃음은 '광끼'가 느껴져서 역시 캐릭터의 모습과 어긋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차승원'은 홍보와 달리 악인적인 이미지를 풍기진 않는데요. 설정 자체가 '미국 유학파 MBA 재원'으로 나오기 때문에 냉철하면서도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상당히 성공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화의 스토리상 조금더 똑똑하게 나왔어도 되는건데 마지막에 좀 흐지부지한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그것마저 다 계산된 스토리였다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이 영화는 역시나 '곽경택'의 영화가 맞습니다. 이미 70%를 촬영한 상태에서 뒤늦게 합류한 '곽경택'이어서, 어느 부분에 어떻게 손을 댓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토리의 중요부분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을 거라 생각하고요.
몇 몇 부분의 어색한 설정은 제외하고서라도 정말 악한 인물로 등장하는 '강동신용금고' 이사장 '송영창'의 이미지나 도심에서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추격신, 인천부둣가에서의 라스트 신 이런 부분들은 '곽경택'의 영화들과 연관짓지 않을 수 없더군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
정리하여 말하자면,
두뇌게임의 수사물로서는 <범죄의 재구성>보다 치밀하지 못하고,
하드보일드 형사물로서는 <사생결단>의 그 암울한 분위기 보다 못하지만,
그다지 머리 아프지 않은 두뇌게임과 해피한 결말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나름 즐길수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새 우리 나라 CG나 특수효과들도 많이 발전해서 전혀 어색한 장면두 없고
두 배우의 연기는 상당히 볼만하니까, 두 배우를 좋아하신다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뭣보다 최고로 연기를 잘했던 사람은 <복면달호>의 '나태송'역을 연기 하셨던
'안토니오'역의 '이병준'님이었지만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주 아이랜드~'
When : 2008년 08월 09일 17시 35분
Where : CGV(오리)
(★★★★☆)
월트디즈니와 픽사의 에니메이션 월·E를 보았다.
원래 이런 영화는 유쾌한 친구들과 같이 가서 보아야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재밌는데, 흑..
뭐 하여간,
주말이긴 하나, 더빙이 아닌 자막이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은 별로 없겠지.. 하고 들어갔더니, 왠걸...
옆에 5살쯤 되어보이는 아가씨는 시작하자 마자 언제 끝나느냐고 계속 물어보고, 뒤에 7살쯤 되어보이는 왕자님은 우스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등받이를 발로 구르는 통에 허리를 뗀 불편한 자세로 보고 말았다.. ^^
허나,
아주 늦은 밤이나 조조영화가 아닌이상, 아님 거의 내려갈 때쯤이 되지 않는이상 이런 불편은 감수해야지...애들이 무슨 죄야.. 부모가 잘못이지...
여튼, 영화의 내용이 아주 재밌어서 중간부터는 그런거 신경 안쓰고 잘 봤다.
인간보다 더 인간 적인 로봇 월·E(WALL·E: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Class, 지구 폐기물 수거·처리용 로봇)는 인간들이 버리고간 지구를 혼자서 700년 동안이나 지키고 있었는데, 인간들이 탐사용으로 보낸 로봇 '이브'와 만나게 되면서 사랑이 싹트고, 둘의 활약으로 인간들을 다시 지구로 귀환하게 한다는 정도의 내용...
뭣 보다 영화를 보면서 의미있게 다가왔던 것은,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영화들의 등장 이후 로봇이 인간성을 가지게 된다는 설정은 모든 SF영화의 공통적인 설정처럼 되어버렸는데,(물론 그 이전의 영화도 있었고, 소설에서는 더 빨랐겠지만...) 그렇게 그려진 로보트들이 항상 악의 형상으로 인간과 대척점에서 서서 인간을 위협하거나,
미래의 시대에 로봇보다 더 기계적인 인간들에 비해 인간적인 로봇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가는 뭐 그런 항상 대립적인 내용이었다면,
이 영화 '월·E'는 로봇과 인간이 하나가 되어 사는 세상을 그린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니모를 찾아서>가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보면(아이들이 자기네 집 어항 속의 '니모'를 살리겠다고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 이 영화를 보고 자라난 아이들은 로봇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와 같이 여기게 된다면 좀 확대해석일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가 물론 대부분 로봇이라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악당과 같은 로봇은 전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구 귀환을 방해하는 '오토'와 '고-4' 조차 이미 'Buy N Large'사의 회장으로 부터 '지구 귀환 계획'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고,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은 끝끝내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식물'을 제대로 없앨 수 있는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절대 생명을 해하는 일은 하지 않는 착한 로봇들이다.
또한, 이러한 프로그래밍에 이상 반응을 보이는 '오작동 로봇'들의 면면들을 보아도 그들은 치료를 위하여 정비소에 모아져 있기는 하나, 나중에 그들이 '월·E'에 의해 탈출에 성공하여 함께 몰려나가며 하는 행동들을 보면, 그들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한다.
상황이 이쯤 되니, '이브'와 '월·E'간의 사랑은 그야 말로 당연지사 인듯 여겨져, 엔딩이 가까올 무렵 작은 소동으로 '월·E'가 '이브'를 알아보지 못할 때에는 조금의 과장도 없이 영화관 안이 모두 숨을 죽이고 안타까워하고 있었음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진짜 주제,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다음 엔딩 크래딧과 함께 나오는 일러스트 에니메이션이 아닐까 한다.
모두가 정착하게 된 지구에서, 인간과 로봇들이 서로 힘을 합쳐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작물을 재배하고 직립보행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 그 푸른 벌판을 달려가는 '월·E'와 '이브'.
사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을 악인을 만들고, 범죄자를 만들고, 기피하고, 반대로 무시하고, 멸시하고 하지 않는가.
세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범죄의 대부분은 이런 막연한 공포, 이기심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아직 '인격'을 갖지도 못하고, 아직 우리 앞에 실체를 보이지도 않은 '로봇'들을 막연히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아닐지....
디즈니사와 픽사의 에니메이션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즐거움 선사하여 주기 때문에, 그다지 짚고 넘어가고 싶진 않지만,
극히 보수주의적 색깔을 띠는 디즈니사 아니랄까봐, 달에 꽂아 놓은 성조기가 나올 때는 '꼭 이래야만 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에 비해, 소련의 위성인 '스푸트니크'가 위성쓰레기로 '월·E'에게 씌워져 우스꽝스럽게 나올 때에는 '이건 또 뭐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외계 오염물질'을 가득 뒤집어 쓰고 있는 청소 로봇 '월·E'와 온통 우아하고 이름까지도 예쁘기만한 '이브'와의 사랑은 다름아닌 신데렐라 스토리...
뭐 월트디즈니에게 뭘 바라겠나.. ^^
그래도, 한 껏 우스며 즐거울 수 있는 영화.
재미있는 에니메이션. 월·E!
보실 땐, 엔딩 크레딧도 유심히 살펴 봐주시길..^^
소설가 김연수 또한, 애써 외면하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작년 제작년 쯤, 생활과 삶과 일에 대한 무기력증으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서 "뭐 재밌는 거 없을까?" 를 입에 달고 살던 몇 달이 있었다. 그런 무기력증은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 해에도 수십번씩 지나쳐가는 일과와도 같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국면을 전환할 어떤 계기를 다만 찾기 싫어하고 있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 쯤에, 지인이 읽어보라고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김연수"
"아마 니 스타일에 맞을 거다. 글 잘쓰고, 탐구적이고, 약간 머리 아프고."
그 이야기를 듣고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이 책, 저 책을 들춰봤지만, 사실 머리에 들어오는 책은 없었다. 그리고 왠지 잘 맞을 것 같다니까.. 아니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래서, 돌아서 다가가고자 구입한 책. "여행할 권리" 요새 여행기 엄청나게 나오고 또 팔리는 것 같던데, 김연수도 별 수 없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들었는데. 보기보다 촉감이 탄탄하게 느껴진다.. 출판사를 봤더니.. 창비.. 그럼 그렇지..
쉽게 읽을 책은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역시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외형상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김연수의 문학과 무관하지 않다. 구성상 1, 2부가 나눠져있진 않으나, 앞 부분의 몇 번의 여행기가 그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나 자신이 여행을 오게 된 이유등에 포인트를 주고 신변잡기적으로 풀어나가는 가벼운 에세이라면, 뒷 부분의 여행기들은 그야말로, 자신이 평소 궁금해 하거나 소설을 쓰고자 관심을 가졌던 곳을 답사하며 소설 속 인물을 정리하고 구상해나가는 과정이라 상당히 어렵고,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앞 부분의 반 정도를 읽을 땐, 혼자서 키득키득 웃느라 정신 없었던 적도 있었고, 작가 특유의 신경질적(?)인, 좋게 말해 섬세한 기지 속에 묻어나는 어설픔 때문에 인간적 애정을 느꼈지만, 뒷 부분의 반을 읽을 땐, 아..뭔가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할만큼 김연수의 치열한 작가정신을 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산문집을 관통하고 있는 커다란 단어 한 가지는 "국경", 혹은 "접경"으로 표현되고 있는 물리적, 심리적 경계인데, 그러한 경계가 한 사람의 인간성, 혹은 정체성, 혹은 문학적 성취력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끊임없이 그 경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김연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구나가 그렇듯, 자신이 그어 놓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건너가지 못하는 한 언제나 그 안에 머무면서 그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그런 삶.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구나 "국경", "경계"의 밖으로 "여행할 권리"가 주어져 있고, 그 "여행할 권리"를 누리고 나를 초월하느냐, 아니면 그냥 나에 안주하느냐.. 하는 것은 선택이라고 김연수는 말하고 있다. 김연수의 소설들에 대해서 대충은 알 것 같은 느낌....
앞 부분은 즐겁게 읽어서 "오~ 재미없단 말 구라잖아?" 하고 읽다가 뒷 부분을 머리 싸매고 읽어서 쉽게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
Tracked from Fly, Hendrix, Fly 2009/01/0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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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 김연수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여행을 꿈꾼다는 거 생각해보니, 대한민국, 한반도의 남쪽에 사는 이에게 국경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거나, 혹은 북한을 돌아서 가지 않은 이상에야 다른 나라 땅을, 즉 국경을 넘었다는 표식을 만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범죄자가 탈주를 위해서 국경을 몰래 빠져나가는 일들을 보아왔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지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갈구해 본적도 없었다..
오늘은 근무일.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출근하여 자리에 앉았는데,
평소 아버지같고, 인자하신 선배님 같고 하신 내가 좋아라 하는 권선생님께서 내게 오셔서 물으셨다.
"국수.. 안먹여줄거에요? 애인 없어요?"
참.. 이런 경우에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더 이상의 답변하기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 있어요. 곧 국수 드리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정도의 애교섞인 답변을 하는 것이 상책이나,
가까운 사람 몇몇이 벌써 내 상황을 알고 있으므로 섣불리 거짓으로 대답했다가는 실없는 사람이되고 말기 때문에, 결국 안쓰러운 시선을 받을 걸 알고서도 곧이 곧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예.. 없어요 선생님.. 그 참 어렵네요...^^;;"
하여, 사실 그닥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라도 말해야 동정어린 안쓰러운 시선을 후딱 받고 지나갈 수 있으므로 순순히 대답을 하게 된다.
"아.. 그렇군요.. 선생님, 교사, 교사에겐 교사가 딱 좋은데...그쵸?"
"아.. 네.. 선생님 좋죠..^^;;"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지는 모르겠으나 권선생님께서는 항상 끝을 "교사는 교사와"라고 말하시면서 끝맺으신다..
마침 오늘이 말복날이라,
귀여운 후배녀석들과 오붓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닭 한마리 잡으려고 달린 천안행...
어색할 거라던 P양의 말대로 참 화기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모습을 한참이나 귀여워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더니,
뜬금없는 J군의 물음.
"형, 좋은 소식 안들려줘요?"
"응?? 무슨??"
"에이.. 형 나이쯤 되면 좋은 소식은 한 가지 밖에 더 있나?"
"어...결혼?^^;; 너 보내고 갈게."
"에이 어떻게 그래요..."
"결혼하고 싶니?"
"결혼하고 싶기도 하고, 안하고 싶기도 해요."
"어.. 알 것 같다."
이리 저리 이야기는 돌고 돌다가,
결국 너 먼저 해라, 너나 가라, 오빠 먼저 가세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먹구름 낀 인생들...ㅋㅋㅋ
집에 들어와서 씻으려고 욕실로 들어가는데 어머니께서는 또 이러신다.
"얘, 너 소개팅 안할래."
"응? 무슨 소개팅? (차라리 '선'이라고 말씀하시지.. 안쓰럽게...)"
"병무청에 다니는 아가씬데, 나이는 서른이고, 공무원 시험 보느라 스물 여덟에 취직해서 2년 돈 벌고 이제 결혼하려구 한댄다. 집안 일을 도맡아 한대지 아마.. 살림은 잘할거래드라.."
"아.. 그 아가씨. 맏며느리 감이네..."
"그치?"
"응, 아가씨 참하네... 누가 그래?"
"응, 저쪽 사는 XX 엄마가.."
"에이.. 아는 사람한테 소개받았다 싫으면 어찌 거절해.. 안할래.."
"......"
하여, 하루가 "국수"로 시작해서 "결혼"을 거쳐 "소개팅"으로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어제 뜬금없이 은숙이 녀석도 소개팅 안하겠느냐고 물어보던데...
항상 솔로가 되면 이렇게 선, 소개팅이 몰려드는 시기가 있다.. ㅎㅎㅎㅎ
이걸,
"그래, 아직 죽지 않았어!"로 받아들이고 기뻐해야할지.
"이런, 벌써 그런 나이가 되버린건가..."로 받아들이고 슬퍼해야할지...
문제는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건데, 낸들 어쩌라구..ㅎ
요런 시기를 거치고 나면,
누군가 짠! 나타나던데, 이번에도 그럴라나??
생각해보니, 나의 연애 전력대로라면 짠! 할 시기가 되긴 됐다...ㅎㅎㅎ
뭐 시간에 맡겨 놓을 수밖에...
그나 저나, 천안의 J군이 딱 내 29때 모습인데...
지금 못가면 완전 못갈텐데..ㅋㅋㅋ
어서 후딱 참한 처자 한 명 만나 알콩달콩의 꿈을 이루길...
When : 2008년 08월 03일 08시 10분
Where : 미로스페이스 (광화문)
(★★★★)
계속 나를 피해가기만 하던 토니 타키타니를 만났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꼭 보아야 했던 영화인데, 소리소문 없이 개봉했다가 지나간 뒤에 아쉬워했었고, 예매를 했더니 병이 나버리는 그런 인연이 닿지 않던 영화였다.
뭐 암튼 이번에도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미로스페이스 바로 앞에 있는 씨네큐브에서 "록키 호러 픽쳐 쇼"를 먼저 예매했었는데, 그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토니 타키타니"의 시작시간과 정확히 1분도 틀리지 않고 똑같아 볼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횡단보도도 없는 그 길을 무단횡단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보게된 영화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모음집 "렉싱턴의 유령"에 실려 있는 "토니 타키타니"라는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혼자 외롭게 생활을 하던 "토니 타키타니"는 우연히 옷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잘 입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 여자와 홀리 듯 결혼하게 된다. 그 여자에게는 옷과 신발과 같은 것들을 병적으로 사 모으는 습관이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그 여자가 교통사고로 죽게된 후, 아내와 똑같은 칫수를 가진 가정부를 고용하게 된다는... 후반부가 더 있지만 스토리는 여기까지...
영화는 처음부터 나레이션으로 시작을 하는데,
그 나레이션은 따로 각본을 만든 것이 아닌 겨우 각색을 통해 불필요한 부분만을 제외한 하루키의 소설 지문 그대로였다.
"토니 타키타니의 이름은 정말 토니 타키타니였다."
특이한 것은, 그런 나레이션을 영화 밖의 나레이터만이 읽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의 인물들이 이어받아 주는 형태
예를 들어, "토니 타키타니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매일 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그림만 그렸다." 라는 나레이션이 있다고 하면,
나레이터는 "토니 타키타니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매일 방에 틀어박혀" 까지 나레이션을 하고 영화 속 등장인물이 "혼자서 그림만 그렸다." 라는 식으로 이어받는 형식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소설의 서술자가 이야기를 진행하면 독자들은 머리 속으로 그 장면을 연상하면서 그리게 되는 소설의 독해과정을 영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저렇게 나레이터와 등장인물이 서술방식을 이어감으로 해서, 관객들은 소설의 서술자와 등장인물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소설의 한 구성요소임을 무의식중에 파악하듯, 나레이터와 등장인물이 별개의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로 뭉쳐져 영화를 구성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소설의 스토리텔링의 기술적 방법을 영화에 그대로 옮겨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스크롤되듯 카메라 테이킹을 통해서 장면을 전환시키는 데, 이것 또한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책장을 넘기며 잃는 방식,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책을 우에서 좌로 읽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방식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말을 빌려보자면, 감독은 이 소설에 짙게 깔린 고독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필름을 탈색시켜 가며 현상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시작부터 푸른 빛이 도는 회색톤이 가득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고, 거기에 더해지는 나레이션, 게다가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토니 타키타니"의 모습.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선율까지... 그야말로 하루키 문학을 어떻게 하면 영상으로 제대로 옮길 수 있는지에만 신경쓰고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소설과 영화의 차이점을 찾아보자면,
소설에서는 아내가 단순히 교통사고로 죽는 것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분명히 차를 다시 유턴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고,
소설에 없는 아내의 옛 애인의 등장,
그리고 결말의 처리 방식인 것 같다.
아무튼,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하루키의 소설에 담겨있는 고독과 외로움의 깊이를 영상을 통해서 얼마만큼이나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것 같은 영화인데,
그런 영화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남자주인공을 맡은 "잇세이 오가타"는 하루키와 너무나도 닮아 있고, 또 그만큼 고독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여자주인공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도 연기를 깔끔하게 잘해주고 있어서 보고 난 뒤에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아직 상영이 끝나지가 않아서 주말쯤 한 번의 상영이 더 남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보고서 절대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니 꼭들 봐주시길 바란다.
덧붙임 :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미야자와 리에만 1인 2역을 한게 아니라,
남자 배우 "잇세이 오가타"도 토니타키타니와, 쇼자부로 타키타니(아버지) 역을
1인 2역 했더군요.... 나만 몰랐나.. ^^;;;
Tracked from Different Tastes™ Ltd. 2008/08/1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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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힛트 소설'들은 왜 영화화되지 않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정확한 속사정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조금이라도 흥행에 도움이 된다면 물불을 안가리는 영화 장사치들이 하루키에게 영화 판권을 사겠다는 제안을 안했을리는 없고, 결국 하루키의 작품들이 이제껏 영상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루키가 그것을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만 했다. 그럼 하루키가 자기 작품들의 영화화를 원하지 않는 이유는? 너무..
여지껏 한 번도 그 시간들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남 부럽지 않게 열심히 살았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했었는데, 왠지 그게 위선적인 것 같다는 생각...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를 읽다 보니, 김연수도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고, 그가 만난 루마니아 청년 "푸르미"도 읽었고, 또 옌벤아가씨 "김여화"도 읽었었는데, 김연수는 70년생... 나보다 6살 많으니까. 39이고, 푸르미는 25, 여화는 22이었다.
푸르미는 그 소설을 4번이나 읽었을 정도이며 현재 헤어진 여자친구가 돌아올 때까지 천통의 엽서를 보내겠다는 열혈 청년이었는데, 그런 열정이랄까, 청춘이랄까... 그런 것은 25살 때에는 당연한 것이므로 진실한 청년인 "푸르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리고 자신은 더이상 그 소설을 읽지 않는 나이라는 그런 취지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푸르미와 더 가까운 나이인가 김연수와 더 가까운 나이인가 생각을 해봤다. (나) 33 - (열혈 청년 푸르미) 25 = 8 (김연수) 39 - (나) 33 = 6 내 나이는 김연수에게 더 가까운 나이, 뭔가 어중간하긴 하나 어쨌든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을 손에서 놓을 줄도 아는 나이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서글퍼졌다.
뭐 그러면서 그런 순수함이랄까, 열정이랄까, 그런 것을 잃어야 하는 대신 얻은게 무엇인가 돌아보다 보니, 지금의 나를 있게 했던 그 봄날의 추억들이 떠오르고 뭔가 잘못 살았다는 기분이 들게된 것이다.
아.. 그런 건가.. 난 별로 이룬 것도 없이 나이만 먹은 건가...
요새 또 새록새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무식한 것이 아집만 많아져서 조금이라도 알면 아는 척 디게 할라하고, 모르면 애써 외면해버리고 더 알려고 하지 않고 하는 참 미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또 들었다.
생각만 하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을테니, 결론을 내자면,
아직 나는 얻은게 아무 것도 없으므로, 뭔가 얻기 위해서 더 공부하고 더 알려고 하고, 더 유식해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뭔가 얻게 된다면, 조금씩 잃어가는 청춘이랄까, 열정이랄까, 봄날의 반짝반짝함이랄까.. 그런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재밌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활도 재밌고, 공부도 재밌고, 애들 그르치는 일도 재밌고, 업무도 재밌고, 무엇에건 즐겁고 재밌는 사람이 되어야지..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
"현재를 즐기되 즐겁고 행복하게..."
명심하고 살아야지.
가끔 이렇게 다짐하고 결심하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18살 소년 같다..멀었어.. 아직 멀었어...
누군가의 인터뷰집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찌 이 사람들은 이리도 해박하며 똑똑한가. 더군다나 이야기의 큰 흐름 속에서 핵심을 꼭집어 답변을 유도하는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더군다나 인터뷰이에 대한 기초지식을 꼼꼼히 쌓아와서 이런 저런 부분들을 인용해가며 질문하는 능력은 단순히 인터뷰자체에 대한 집중을 넘어서 인터뷰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묻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모르겠는 것이, 소통의 부제가 너무나 절실한 요즘 사회를 살면서 이와 같은 시대적 담론 말고도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고 느끼는 나이기에 아무래도 인터뷰집이나 대담집에 관심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정말이지 생각을 교환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여튼,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감명깊게 읽기도 했고, 이미 출판된 그의 한국 경제 대안시리즈들도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터라 관심을 가지고 찬찬히 읽어 보았다.
이 인터뷰집에서도 우석훈 특유의 명랑한 사유와 달변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우석훈이 스스로 밝혔듯이 그는 대기업과 정부와 시민단체를 모두 거쳐온 인물이라 그의 다양한 경험에 비추어서 분석 되는 한국 경제는 결코 밝지만은 않고 되려 암울하기만 하지만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의 불빛이라도 건져내기 위한 그의 노력들을 느낄 수 있었으며, 자신의 해박하고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자세를 낮춰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학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책무를 성실하고 묵묵히 수행하고자 하는 모습에서 본받을 점도 많은 인터뷰집이었다.
비록 나는 우석훈이 분석하고 있는 세대 구분으로 볼 때, 기득권을 휘두르고 있는 386세대도 아니고, 그들에게 눌려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인사만 하는" 20대도 아닌 끼인세대일 뿐이지만, 심리적인 측면으로는 386세대의 정신(?) 같은 것을 물려받은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볼 수 있고, 직업상 막 20대가 된 세대들, 그리고 그보단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10대들을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우석훈의 분석이나 대안들이 어쩌면 당위적인 테제로 인식되고 받아들여 질 수밖에 없었다.
그 가운데, 정치가도 아니고, 사회 운동가도 아니고, 경제학자는 더더욱 아닌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가져야하는 생각, 태도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인터뷰집이었다.
우석훈은 이 인터뷰 속에서 경제의 논리만으로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자주 예술의 힘, 지식인의 힘을 강조하고 우선 대중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예술인들, 지식인들이 나서서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비꼬고 조소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자들이나 일반대중들이 생각을 하게될 여지가 발생하고 그 안에서 담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좀더 똑똑해지고, 대중들도 영리해지고, 좌파 우파들이 공부를 많이 해서 서로의 견제 속에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역시나 우리의 가장 무서운 적은 무식과 상상력의 부재 바로 그것 일 것이다.
인터뷰집의 특성상 그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이 얘기 저 얘기가 왔다갔다하는 측면이 없진 않지만, 이 책의 의의는 지승호라는 사람이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을 모아 담론의 장을 펼치고자 한다는 의미, 그 안의 한 권이라는 의미가 있고 이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우리도 그러한 지성들의 담론에 장에 간접적으로나마 리엑션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지승호의 작업들이 꾸준히 계속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책에 우석훈 박사의 많은 책들이 언급되면서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직접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으므로 우석훈 박사의 책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 어느 때고 도움이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논리적 맥락을 따라 읽어가면서 자칫 쉽게 넘어가버렸을 만한 내용들을 생생한 구어체의 문장으로 접한다는 것은 또다른 생각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벌써, <88만원 세대>가 불티나게 팔리던 작년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자기계발서와 여행기가 불티나듯 팔리는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듯 하다. 물론 요즘과 같이 대책없이 팍팍하기만한 세상에서 나보다 남들을 먼저 생각한다는 게 너무나 어렵고, 내일도 아닌 몇 년후, 그리고 내 아이들의 세상을 생각한다는 것이 내 한몸 건사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베스트 셀러 목록에서 위와 같은 책들을 꾸준히 접할 수 없게 된다면 또한 불행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Tracked from Libralist monolog 2008/08/0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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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상세보기 우석훈 지음 | 시대의창 펴냄 우리 시대를 위한 희망 찾기에 나서다 지승호의 열네 번째 인터뷰집 <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절망에 빠진 20대에게 희망을 선동한『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과 독립 인터뷰의 경지를 개척해온 지승호가 한국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희망 찾기를 시도하였다. 대담이나 인터뷰를 싫어한다는 우석훈이 지승호에게 선동되어 나눈 다섯 번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 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