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는 내 중,고등학교 선배이자 국어과 선임교사인 '오'샘이라는 분이 있다.

처음에는 서로의 출신성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던 고로,
그냥 담배 친구로 지냈었는데,

어느 날인가 고향을 묻게 되어서 같은 고향임을 알게 되고, 그렇게 이러 저런 이야기가 오가다 보니,
그런 관계임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꽤나 흘러, 허물없이 지내오던 터였고,
그런 것에 신경쓰는 것을 서로 귀찮아하기도 해서 그냥 맞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잘 지내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간 '오'샘은 익히 그 역마살을 잘 알고 있었던 어머님의 계획적 결단에 의해 일찌감치 장가를 들어 벌써 애가 둘인데,

큰 딸이 '아섬'이라는 이름, 둘째 아들 녀석이 '솔겸' 이라는 예쁘장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주인공 '아섬'이는 몇 년 전 말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언행들로 화제가 되었었는데,

어제는 '오'샘이 또, 이런 이야기를 전해 왔다.

"아섬이 때문에 어제 또 뒤집어졌다."
"몬데 몬데?"

나는 완전 흥미진진한 표정을 하고 물어봤다. 분명 재밌는 이야기일테니까...

"응, 요녀석이 요새 TV에 심취했거든. 어제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서 이러는 거야."
"아빠 아빠, 오늘 테레비에서 진짜 무서운 거 한데!"
"응. 그래."


아빠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프로그램의 무서움에 대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해서,
심각성을 일깨워야 겠다고 다짐한 아섬.

"아빠 아빠, 얼마나 무섭냐 하믄"
"응, 얼마나 무서운데."
"막, 막, 여자가 머리 풀고, 막, 막, 피도 막 흘리고, 여우도 나온데, 디게 무섭겠지? 응?"
"응, 무섭겠네.. 그게 무슨 프론데?"


말하면서 혼자 상상하다가 무서워진 아섬이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아빠의 어깨를 짚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단다...


"응.. '진.실.의. 고.향.'!"



완전 센스 만점이다.
'오'샘 말을 들어보니 요새 새로운 단어들을 익히느라 여념이 없어서,
간혹 앞 뒤 글자를 잘못 알아 듣고, 그런 말들이 맞다고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귀여운 녀석,
작년까지만 해도, 낯가림이 많아서 만난지 두 시간은 되어야 말을 걸더니,
요샌 꾸벅꾸벅 인사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피하지도 않는다.

간혹 내 차를 탈때면, 선루프를 열고 목내밀겠다고 우기는 '새침한 공주님'
그렇게 귀엽게만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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