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이 맑았어요.
밤이로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김억, <봄은 간다> 中 -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드러하노라.
- 이조년
누가 국어 선생님 아니랄까봐, 시로 포스트를 시작하느냐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래도 오늘은 좀 선생티를 내볼까합니다.
오늘은 국어과 회식이 있었던 날입니다. 제가 총무를 맞고 있기 때문에, 작은 모임이라도 이것저것 해야할 일들이 많았지요. 국어과 선생님들이 총 13분인데, 제가 딱 중간 정도 됩니다. 그러다보니, 한참이나 차이나는 선배님들을 모시고 모임을 치뤄야 하기 때문에, 눈치아닌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과 선생님들은 모두 점잖으시고, 이해심이 많으신 편이어서 대개 시작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한 가운데 마무리되고는 하죠.
회식을 하게 되면, 당연히 음주와 가무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잔을 걸치고 노래방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이 아니라 노래방을 꼭 가야할 코스정도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듣는 것은 좋아하기 때문에 간혹 가고는 합니다.
오늘은 어른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70~80노래들을 부르게 되었는데, 사실 또 제가 애늙은이 처럼 그 시절 노래를 참 좋아라 합니다. 그래서 즐기다보니, 평소엔 어렵게 생각되던 선생님들과도 어깨동무를 하고 방방뛰기도 하면서 참 정겹게 놀다가 왔습니다. (우리학교 국어선생님들은 한 분 빼고 모두 남자분들.)
그렇게 회식을 마치고 뿔뿔이 흩어져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음주 운전은 아니에요~) 왠지 정겨워진 마음에, '봄밤'이 참으로 좋았답니다.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는 '이조년'의 시조가 떠올랐고,(시조를 좋아한다니 역시 애늙은이 같죠?ㅎ) 또, '김억'의 저 싯구절이 생각이 났답니다.
그런데, 제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싯구들과 함께 생각났던 '정겨움'에 대한 기억입니다.
제가 살면서,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좋았던 말 중에 하나이지요.
대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제 모교가 있는 '공주'는 원래 사범대학으로 유명했던 곳이고, 근처에는 '교대'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지리적 위치상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던 곳이라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십여년 전에는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꼭 그렇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야학'도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범대학 학생들과 교대학생들이 연합으로 교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과에도 '야학교사'를 하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저는 마음만 있을 뿐, 선뜻 나서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녀석이 방학 동안 교사가 모자라니 나와서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사범대에 다니고 있으면서도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제 능력으로는 무척이나 모자라는 것이고,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면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남들 다하는 '과외' 아르바이트도 안했었습니다. 그러나 거듭 부탁을 하는 친구녀석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방학 동안만 한다는 확인을 받고 1학년 겨울방학 동안 초등반 '국어'와 '산수'를 가르치게 되었답니다.
저는 그때까지 '야학'이 학교에 다닐 형편이 안되는 아이들이 와서 배우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당시엔 의무교육이 이만큼 제대로 실시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는 것인 줄 알았죠.
그런데, 그런 제 생각은 '야학'을 하나도 모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고등반이나 중등반 정도에 가면 그런 아이들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맡게된 초등반에는 대부분이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삶이 어려웠을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저씨, 아주머니 20여분이 초등학교 졸업장을 얻기 위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반에서 제가 제일 먼저 한 수업은 깍두기 공책에 '0'부터 '9'까지를 쓰는 법을 알려드리는 것과, 역시 깍두기 공책에 '가'부터 '하'까지를 써드리고 한 바닥을 채우도록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언뜻 이해가 안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짜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그 분들은 정말 열심히, 그리고 너무나 신기해하면서 배우고 계셨습니다.
'야학'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제 아버지같고, 어머니같은 분들이 좁은 책상에 옹기종기 앉으셔서 정말 반짝이는 눈을 하시고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면서 정말 깍듯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분들 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하기도 하고, 민망해하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라도 더 정성스레 알려드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 모이신 분들은, 자영업을 하시는 도중 잠시 가게를 맡기고 오신 분, 남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다려서 밥을 하고 애들을 먹이시고 오신 분,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오신 할머님 이런 분들이셨습니다.
사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가르친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았던 짧지만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저는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오게되었을 때, 그것도 인연이라고 짧은 송별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선생님들께 약속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군대를 마치고 오면 다시 꼭 오겠다고'.
그런 제 말을 들으면서 교대를 다니고 있던 저와 같은 학년의 한 선생님이 저의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학은 들어올 땐, 맘대로 되지만, 나갈 때는 맘대로 안되는 거 아시죠? 꼭 다음에 다시 오셔야해요.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평소 같으면 괜히 하는 말이라거나, 괜한 압박으로 들렸을 말이지만, 그 선생님의 따스한 눈빛을 보니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혼자 생각일지 몰라도 그처럼 따스하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 말 한마디에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무한한 정다움과 함께 내가 원하든 원하지않든 속하게 된 울타리라는 것이 무척 편안함으로 마음 한 곳에 벅차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학생으로 복귀를 한 뒤에도 간혹, '야학'을 찾기도 했었고, 군대를 제대할 때 쯤에는 진지하게 '야학'교사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었지만, 제 게으름 때문에 아쉽게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정도면 어디가서 '야학' 교사를 했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것이어서 자랑할 것도 못되지만, 그날 느꼈던 그 따스한 정 때문에, 쉽게 잊지는 못하는 기억입니다.
오늘은 차를 타고 돌아오다가 문득 그 때, 그 선생님의 말이 생각이 났더랬습니다.
그래서 왠지, 밤길이 꽃핀 밤처럼 환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왠지, 제가 꽤 잘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이야 어떻든, 이런 생각이 때로는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주는게 아닐런지요.
따스함, 정겨움, 이런 것들이요.
그래서 저는 오늘 혼자 행복했답니다.
그리고 오늘 저 행복했다고 자랑도 하고 싶었습니다.
여튼, 오늘은 쉽게 잠들기 어려운 밤이 되겠네요.
좋은 밤 보내고 계시죠? 후후.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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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은 어떻게 잘 보내셨나요???
ㅎㅎ 드디어 5월이예요...
달력을 넘기고 스케쥴들을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급해집니다...
글을 읽다 왠지 "내마음의 풍금"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네요... ㅎㅎ
제가 사는 대야미는 교통이 좋은 곳이라 도시 속의 전원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살죠... 그래서 사장님들이나 교수등등... 그런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저는 이곳으로 이사와서 너무나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지하철로 조금만 가면 숨이 꽉꽉 막히는 도시들로도 갈 수도 있고
나갔다가 여기오면 천국같은 느낌을 받는 곳이랍니다...
마을버스를 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절로 웃음을 짓게 되는
곳이지요...
담에 속달동에 납덕골이란 곳에 와보세요...
카메라 들고 오시는 분들도 참 많고 삶의 여유를 즐기러 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오빠가 왠지 좋아할 듯...
봄의 낮도 햇살이 너무나 싱그럽습니다...
정말 좋은 곳에 살고 있군 ^^
요즘은 사진도 못찍고,
만날 올리는 사진이라곤 예전에 찍어놓은 것 뿐이네...
언젠가 시간내서 사진도 찍으러 가야할텐데 말야.. 후후..
어린이날부터 또 비가 시작된다니..
귀여운 아이들과 나들이 가기 힘들어서 어쩐대..
저도 봄밤을 좋아합니다!! ㅎㅎㅎㅎ
특히 , 밤에 바라보는 벚꽃은.. 하..
일찍 져버리지만 않았어도, 지금도 흩날리는 꽃잎을 달빛과 함께
즐길수 있었을텐데요.. ㅜㅠ 아쉽습니다.
우와 ! 구름이 진짜 이뻐요ㅜㅠ 저도 하루종일 구름을
보고 있었는데요..
저는 아직까지도 구름이 수증기로 이루어 졌다는것을 믿을수가 없습니다. ㅎㅎ
만져본적도 없고, 성분을 채취해다가 연구해본적도 없을텐데..(있나요?.. ㄷㄷ)
구름은 아마..
구름크림 뭐, 이런걸로 되어있을겁니다.
떠먹으면 맛도 나지 않을까요?ㅎㅎㅎㅎㅎㅎ
날씨가 좋아져서 참 다행입니다^^ㅎㅎ(급화제전환..ㅎ)
아마 '차이와 결여'님의 우울함이 좀 사라진 덕분이 아닐까요?ㅎㅎ...
또 저의 망상인가요.. ㅜㅠ ^^ㅎ
구름에 대한 꿈을 가지신 것 보니까 정말 예쁘마음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런데,
구름, 수증기, 채취, 연구.. 라는 말을 보니,
이과 계열이신듯.. ^^
남들은 수증기라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구름크림이라고 우기자고요..ㅎㅎ
제가 날씨를 관장하는 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날씨를 항상 가을날처럼 만들게요..
이것 또한 저의 망상이지요..^^
우와!! 예리하세요.. ㅎㅎ^^
하지만, 절반만 맞으셨습니다.ㅎㅎㅎ
이과였는데요... 흠
이런 마인드로는 이과에서 살아남을수가 없더라구요ㅎㅎ
그래서,
네
전과를했습지요 ㅎㅎㅎㅎㅎ
원래 국어와 사회를 좋아해서 괜찮더라구요 ^^;;;;;;
ㅎㅎㅎ
잘하셨어요. 잘하셨어요.. ^^
결과적으론 잘된 일일거에요..
'clovis'님은 맘도 따스하시니까, 분명 잘된 일일거에요.. 후후..
오랜만이지요, 차이와결여님. ^^
아, 좋다.
저는 이렇게 소근소근 얘기하듯이 풀어내시는 차이와결여님 글을 읽을 때마다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밤이로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저런 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덕분에 저렇게 운치 있는 시도 읽고.
야학에 대한 따뜻한 기억, 정겨움이란 말.
차이와결여님의 행복한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아요.
좋은 일주일 보내시길~ ^^
아하하..
'오랜만이지요..' 라는 말 너무 좋네요. ^^
제 글을 좋아해주신다니 저도 너무 좋습니다.
오랜만이어서 더욱 반갑고 정겨운 발걸음 감사드려요.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요. 후후.
이제 종종 놀러가도록 할게요. 게으름 피우지 않고~
'herenow'님도 건강챙기시고, 늘 행복하셔요..^^